윤리와 무한 읽기(38), 레비나스 강독, 2022년 2월 5일
네모 : 선생님은 타인의 얼굴 안에 상승과 높음이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타인이 나보다 높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으로 하신 것인지요?
레비나스 : "살인하지 말라"는 얼굴의 첫 번째 말입니다. 또는 명령입니다. 얼굴의 나타남에는 마치 주인이 내게 말하는 것과 같은 명령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타인의 얼굴은 벗은 채로 있습니다. 그는 내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건, '첫 번째 사람'으로서, 나는 부름에 응답하기 위한 자원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네모 :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께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죠, 어떤 경우에는.... 하지만 다른 경우에 타인과의 만남은 정반대로 폭력, 증오, 경멸의 방식으로 일어난다고요.'
레비나스 : 확실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전도를 설명하는 동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타인에 대한 지배와 타인의 빈곤함, 나의 복종과 나의 부요함과 더불어서, 제가 지금 한 얼굴에 대한 분석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모든 인간관계에 전제된 것이니까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열린 문 앞에서 "선생님, 먼저 가시지요!"라는 말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기술하려 했던 것은 "선생님, 먼저 가시지요!"의 원형입니다.
1.
'타인의 얼굴 안에 상승과 높음'은 신성의 아름다움이다. 나는 그분의 높음 아래서, 얼굴을 올려다본다. 타자의 상승은 나의 하강이며, 그곳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는 차이가 환대의 가능성이다. 시원에서부터 주체와 동등한 타자를 설정할 경우, 각자는 서로에게 그도 모르는 몫까지 물러나는 일을 알지 못한다. 오직 기원에서부터 '불평등함, 시차'가 에로스를 작동시키며, 진정한 평등을 가져올 수 있는 아름다움의 형식이다.
2.
타인을 '폭력, 증오, 경멸'로 마주하는 얼굴은 '전쟁'하는 전체성이다. 그의 상대적 자유주의는 타자의 부정성을 동일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파악할 뿐이다. 그의 매끄러운 '온유'는 타자를 향한 사랑이 아닌, 자신을 향한 따스함이다. 그의 '겸손'은 적극적 비책임이며, '할 수 없음'을 가장한 '할 수 있음'이자, '적당함'이라는 협애한 직선성이다.
3.
'첫 번째 사람'은 유책성을 우선적으로 인수한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나서며, 모멸과 멸시를 한 몸에 받는 사마리아인이 된다. 시원에서 먼저 물러난 타자성을 항상 기억하며, '벌거벗은 이'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결단인 것이다.
기계적 평등이 아닌 먼저 책임을 지는 일로 '증오와 경멸'을 종식시키며, 가장 '약함'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물러난다. 이는 떠남과 동시에 있음이며, 정주하며 유목하는 역설이다. 비로소 타자성의 아름다움에 머무르는 일은 가능해진다.
자신의 안정적 거주를 포기하며, 그곳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랑'의 가능성이다. 그는 길 위에서 만나는 다른 '약함'이자, '강도 만난 이웃'의 얼굴을 지나치지 않는다. 호모 사케르이자, 고통 속에 신음하는 얼굴에서 신성을 발견한다. 지극히 낮은 자를 그분의 얼굴을 대하듯 마주하고, 그도 모르는 몫까지 주는 책임으로 환대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복종과 부요함'으로, 이름 모를 타자를 위해, 더 낮은 자로 변용할 수 있는 가능성. 비로소 초재성으로 '그곳'이 아닌, 지극히 낮은 편재성으로 '지금 여기'. 고통받고 일그러진 이웃의 얼굴에 비로소 '왕의 위엄과 영광'이 도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