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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안의 화상의 흔적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3)

by 김요섭



그는 복종, 혹은 순종에 가까우리만큼 온순했고, 부인하는 법도 없고, 따지려 들지도 않고, 결코 우리를 비난하지도 않고, 해야 할 모든 것에 순진한 동의를 표할 자세를 갖추었다. 가장 어리석은 그를 너무도 우둔한 사람으로 생각하던 날들이었다. 다는 알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 함께여야만 할 수 있는 것일까? '네'라고 대답하는 것의 행복, 끝없이 긍정하는 것의 행복.


나는 왜 이렇게 그에게 가깝게 접근해 있는 것인가? 그를 대면할 힘이 생기면서 그것은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은 거울 속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과거 속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나 아닐까? "나는 그를 본다"라는 느낌은 오히려 "나는 그를 보았지만 그는 나를 보지 못한다"와 같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관계에 증명될 수 없는 비탄의 회귀를 가져다준다. 그를 결코 혼자 두지 말 걸 그랬다. 나는 그의 고독함이 두려웠다.


나는 그저 그에게서 최악의 결백 상태로 만드는 가벼운 정신을 보았을 뿐이다. 무책임한 만큼이나 몹시도 결백한 존재. 마치 광기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광인처럼. 아니면 내면에 이러한 광기를 숨긴, 언제나 무결점 상태의 존재. 그것은 바로 눈 안에 입은 화상의 흔적이다. 우리는 결핍 속으로 그것을 끌어당겨야 한다. 오로지 결핍을 잃어버린 감정만을 다시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말한다. 그 생각들은 가볍고, 금방이라도 위로 올라갈 것 같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그 생각들을 방해하지 않고 아무것도 그것들을 강행할 수 없다. "하지만 결국엔 씁쓸해지는 것 아닐까?" ㅡ "씁쓸한 것이라? 가볍게 씁쓸한 것들이겠지."

(15~16p)




1.

"네"라고 대답하는 행복은 사라졌다. 끝없는 긍정은 부정될 뿐이며, 무책임한 결백은 위증에 다름 아니다. '너무도 우둔한 사람'인 줄 알았던 그가 '광기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광인'일 줄은. 그의 죽음과 나의 고독은 순식간에 변용된다.


여전히 내 속에 살아있으나, '그는 나를 보지 않는다'의 '씁쓸함'. 그의 상승은 '눈 안의 화상의 흔적'으로 남았다. 영원히 멀어지는 텅 빈 하늘을 향한 고독의 토로. 죽은 것은 정말 그가 맞는 것일까? 그곳을 향해 어루만질 수밖에 없는, 낮은 자의 결핍. 에로스의 시차.



2.

복종할 수 있을까? '순종하리만큼 온순하게' 남겨진 진실을 긍정할 수 있을까? 나는 파편 조각으로 남은 삶이 두려울 뿐이다. 그의 죽음은 잊히지 않는 고독이자 '비탄의 회귀'로 영원히 반복된다. 최악의 결벽 상태의 '무거운 정신'. 중력의 악령이자, 한없이 끌어내리는 결핍의 감정.


텅 빈 하늘은 웅성거림마저 멈췄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재, 수포가 일어난 손바닥 위로 검은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결국엔 씁쓸해지는 것 아닐까?" 황량한 사막, 어디로 가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를 결코 혼자 두지 말 걸 그랬다'는 시차를 두고 반복된, 화상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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