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연습하기 - 자신 편 (1)
페이지: 안녕하세요. 싱클레어 님, 한 주 잘 보내셨나요?
싱클레어: 안녕하세요. 페이지 님, 토론토에 봄이 온 줄 알았는데 4월에 눈도 오고, 날씨가 급격하게 변해서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탄 한 주 같았습니다.
페이지: 그렇죠. 토론토의 단점이라면 겨울이 너무 길고,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이겠죠. 이런 토론토의 단점마저도 사랑할 수 있으시겠어요?
싱클레어: 캐나다 토론토가 전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상위에 꼽히지만, 사람 사는 곳인 토론토도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변덕스럽지만 다른 좋은 면도 많으니 살아갈 만한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사랑하기 위해서 제가 매거진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페이지: 자 그럼, 오늘 질문은 "당신의 소울 푸드는?"이라고 정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싱클레어: 우선 소울 푸드(soul food)는 서아프리카의 음식 문화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노예 상인들에 의해 북미 대륙으로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삶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갈 힘을 준 음식이 바로 그들의 고향인 서아프리카의 음식이었던 거죠. 그때로 돌아가 흑인들의 삶을 상상해 본다면, 그들은 자의가 아닌 강제로 부모형제들과 떨어졌습니다. 노예상인들이 그들을 쇠사슬로 묶어, 몇십 명 밖에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 몇 백 명을 구겨 넣어 몇천 리 길을 항해했다고 합니다. 돌아눕기도 비좁은 그곳에서 대소변도 그 자리에서 해결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온갖 질병에 노출되어 미국 대륙에 도착했어도, 배 위에서 죽은 노예 수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하지요. 이렇게 모진 목숨을 이끌고 도착했지만, 또다시 내 몸이 아무런 자유도 없이 노예 상인에 의해서 발가벗긴 채로 경매 매겨지고, 강제로 팔려나갈 때 느꼈을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그들은 살아갈 의지조차 상실해버린 느낌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백인 농장에서의 삶이란 겨우 목숨에 풀칠할 정도의 음식을 가지고 매일 중노동과 매질에 시달렸을 겁니다. 조금이라도 도망칠 낌새가 보이면 총으로 죽임 당하고, 여성들은 백인들의 성노예가 되어버린 그 어떤 자유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었겠죠.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음식인 소울 푸드는 그들의 고향에서 함께 채집하며, 사냥하며, 음식을 나누어 먹고, 축제를 즐기며, 어울렸던 따뜻한 모습들을 그들의 음식을 통해 떠올리게 만드는 역할을 했을 겁니다. 잠시나마 감옥 같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서 모진 목숨을 그 어려운 환경에서 다시금 연장시켜 주었을 겁니다. 즉, 그 음식 속에서 내가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이죠.
페이지: 정말 그 당시의 노예들의 삶을 상상해 보면 마음이 참 아프네요. 다시 말하면 소울 푸드란 나의 존재에게 힘을 부여하는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싱클레어: 네, 우리가 이국땅에서 한국 음식을 늘 그리워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도 물론이거니와 그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했던 사람들, 공간들, 시간들, 웃음들이 그리워서 그 음식을 먹고 싶은 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음식을 먹으면 잠시나마 토론토에서 느끼는 외로움들, 힘든 일들을 잊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 기분이 좋아지면, 다시금 "그래,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힘을 얻습니다. 항상 한국 가기 전에 무엇을 먹을지 음식 리스트를 작성을 하지만, 한 번도 그 리스트의 음식을 다 먹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음식보다는 내가 그리워했던 것이 그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했던 사람들, 공간들,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음식을 먹으면, 그와 함께 떠올려지는 내 추억 속의 행복한 시간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현재의 힘든 시간도 잠시 잊게 만들어 주면서 다시금 살아갈 힘을 주는 음식을 소울 푸드라 말하고 싶어요.
페이지: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하지만 내가 행복한 시간을 함께 했던 그 사람들과 먹었던 음식들은 한국에 있잖아요. 토론토에서 비슷한 맛을 내는 한국 음식들을 찾기란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싱클레어: 그래서 저는 그 소울 푸드를 한국이 아닌 내 삶의 공간인 토론토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그 음식이 아닌 토론토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소울푸드로 만들면 언제든지 그 맛을 맛볼 수 있고, 그 음식을 먹을 때 내가 행복감이 든다면 토론토를 누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토론토를 떠나서도 늘 그리워할 음식을 말이죠. 따라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토론토에서 나에게 행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음식을 의도적으로 찾아서 나의 소울 푸드를 만드는 것이죠.
페이지: 그럼, 싱클레어 님은 토론토에서 소울 푸드를 찾으셨어요?
싱클레어: 네. 저의 소울 푸드는 베트남 쌀국수인 Pho입니다.
페이지: 싱클레어 님에게 어떻게 베트남 음식이 싱클레어 님의 소울 푸드가 되었나요?
싱클레어: 네, 저는 2006년에 유학을 와서 처음으로 베트남 쌀국수인 Pho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유학을 했던 곳은 미국 아이오와 주의 에임즈라는 학교 타운이었어요. 그곳에 베트남 쌀 국숫집이 있었는데, 진한 고기 육수에, 고수와 얇게 썬 쇠고기와 함께, 숙주, 파, 부드러운 쌀로 만든 면이 들어간 음식인 Pho를 처음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 맛이 너무 강렬했어요. 그때 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영어도 잘 안되고, 모든 것이 서툴렀고, 무얼 하나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을 때도 영어가 잘 안돼 긴장도 되고, 수업시간에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외계 행성에 차원 이동된 느낌이었어요. 바보가 된 느낌이랄까요. 또 이런 부분은 누구에게 의존을 할 수 없었기에 전적으로 저의 능력에 달려 있었어요. 하지만 낯선 환경이 처음이라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능력도 제대로 발휘를 하지 못했고, 이 환경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맛보았던 음식이 바로 Pho였습니다.
따뜻한 국물이 마치 저를 위로하는 듯했고, 얇게 썰은 쇠고기는 뜨거운 국물에 데쳐져 쓰리라차 소스와 호이신 소스가 함께 어울려 만들어 내는 소고기의 부드러운 육질과 매콤하면서 달콤한 맛은 제 마음에 기쁨을 주었습니다. 거기에다 쌀로 만든 부드러운 면은 뱃속을 든든히 채워져 제 몸을 충만케 했습니다. 거기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모든 면에서 저에게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지칠 때 Pho를 먹게 되면 현실의 어려움을 잠시 잊어 먹고, 다시금 도전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후로 저는 어딜 가든지 Pho를 늘 찾아다녔습니다.
페이지: 혼자서 유학 생활하셨을 때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 힘든 어려움을 Pho가 싱클레어 님에게 힘을 주었군요. 하지만 Pho는 어딜 가든지 맛볼 수 있잖아요. 토론토에도 많은 Pho 집이 있는데, 어떤 Pho 집에 상관없이 Pho가 싱클레어 님에게 그렇게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나요?
싱클레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Pho 집마다 음식 맛이 다 다르기에, 어떤 곳은 저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Pho 사냥꾼처럼 저에게 그런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는 여러 Pho 집을 찾아다녔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찾은 Pho 집은 Pho Hung이라는 곳인데, 이 집은 토론토에서 유명하더라고요. 제가 이 집의 Pho를 먹었을 때,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국물의 구수함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불친절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만큼 맛있었습니다. 이 Pho를 먹을 때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겠다는 한국 속담처럼 저를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페이지: 싱클레어 님이 그렇게 몰입할 정도로 맛있다니, 저도 그 식당을 꼭 가봐야 할 것 같네요. 그래서 싱클레어 님에게 이 식당의 Pho가 소울 푸드란 말씀이신 거네요?
싱클레어: 네. 저는 이곳의 Pho를 먹는 때 느끼는 위로와 기쁨은 제가 토론토에 살아야 할 이유 중 한 가지를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토론토를 떠나더라도 이 시간, 이 공간에서 먹었던 이 Pho가 늘 그리워질 것 같아요. 그리고 힘들거나 마음이 지칠 때마다 저는 이 곳을 찾는데,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음식이지만 저에게 늘 힘을 줍니다.
페이지: 싱클레어 님이 한국 분이시기에 한국 음식이 소울 푸드라고 생각했었는데, 소울 푸드가 Pho라고 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하지만 싱클레어 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사는 현재 이 공간에서 나에게 만족감과 힘을 주는 음식을 발견한다면 삶이 풍성해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토론토의 Pho Hung에서만 맛볼 수 있는 Pho라서 싱클레어 님에게 토론토가 삶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을 주었겠네요?
싱클레어: 네. 맞습니다. 페이지 님.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꼭 짚어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현재 낯선 땅인 토론토에서 내가 좋아하고 행복감을 주는 음식이 하나라도 있다면, 내가 외로울 때, 지칠 때, 나를 격려하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습니다.
페이지: 싱클레어 님 말씀대로 저도 토론토에서 저에게 맞는 소울 푸드를 찾아봐야겠어요. 오늘은 싱클레어 님과 함께 토론토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인 소울 푸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토론토 혹은 한국을 떠나 사시는 여러분, 현재 살고 계시는 곳에서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