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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남긴 죽음의 의미

피해자에게 가장 힘든 점은 동료들이 침묵할 때이다.

by 싱클레어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의 구조화된 폭력은 고귀한 한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죽음은 고인에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을 것이고, 가해자에 대한 복수였을 것이고, 침묵하는 동료들에 대한 배신감과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비극을 접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지난 몇 년간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인을 잃은 가족에게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고, 그리고 앞으로 고귀한 생명이 폭력에 의해서 희생되지 않도록 고인을 기억하고, 내가 속한 집단내에서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고, 구조화된 폭력이 있다면 그것을 없애는데 함께 힘을 보태고 저항하는 일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귀하다. 그 누구에게도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폭력을 당하면 처음에는 참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속된 폭력은 사람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자신의 존엄이 짓밟히고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수년 동안 속해왔던 직장에서, 그리고 평생 한 분야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했던 곳이라면, 그곳이 전부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저항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는 것이다. 고인의 저항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자신만의 폭력을 위해서도 용기 있는 행동이지만, 자신의 동료들이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하고, 또 후배들이 더 이상 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마음이 저항해서 받는 불이익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인의 죽음으로 만천하에 그들의 폭력이 드러났고, 그들은 법적인 처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묻고 싶다. 우리는 언제까지 누군가가 폭력에 희생을 당해야만 그때서야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시간 지나면 또 희생자가 나오는 일을 반복할 것인가? 그 희생자가 미래에 나일 수도 있고, 나의 가족일 수도 있고, 지인일 수도 있다. 왜 피해자가 죽어야 하는가? 왜 피해자가 도망가야 하고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가?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폭력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곳이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비폭력적인 문화를 만들어 이제 너도 나도 안전한 곳에 살아보자.


이를 위해 현재까지 나온 뉴스를 보며 구조화된 폭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또한 폭력을 당한 피해자에게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지, 폭력에 대해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구조화된 폭력이란 가해자의 폭력이 그가 속한 사회적 집단내에서 묵인되거나 처벌 없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이며, 피해자가 양산되는 고착화된 폭력이다. 이는 가해자의 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위치의 상사와 동료들이 묵인하는 경우, 가해자의 집단내에서의 지위가 피해자에게 경제적으로 관계적으로 심각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경우, 그리고 상부기관에 가해자의 폭력을 고발해도 중단되지 않는 상황에서 폭력은 고착화되며 구조화된다.


고인이 처한 상황은 감독과 팀 닥터,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폭력을 당했고, 이를 지난 4월 체육회와 스포츠 인권센터에 신고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고인이 원하는 것은 객관적인 진실이 드러나고, 폭력을 행한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 더 이상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으며, 고인이 속한 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고 당당하게 선수생활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이 사건은 진실이 드러나야 하고, 정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하며, 고인의 가족들이 위로와 정당한 보상을 받고, 반복되는 구조적 폭력이 종식될 때, 고인은 하늘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감독, 팀 닥터, 동료 선배가 주요 폭력 가해자라고 뉴스에 나와있다. 앞으로 더 사실관계가 확인되어야 하겠지만 고인이 고소한 사람들이 그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위의 구조화된 폭력의 모두가 해당되는 사항이다.


첫 번째, 주요 가해자인 팀 닥터는 지속적으로 폭언, 가혹행위, 그리고 물리적 폭력을 고인에게 행사하였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원이라면 성과에 책임지도록 되어 있고, 그에 따른 징계 절차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징계 절차들이 있는 것은 상사로 하여금 부하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징계 절차에 맞게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에 있다. 조직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한이 법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폭력에 대한 그 어떤 변명이나 정당성도 허용될 수가 없다. 팀 닥터가 행사한 폭력이 더욱 악한 것은 자신의 폭력에 대한 정당성을 피해자의 잘못으로 돌렸고, 인정하지 않았으며, 동료 선수들에게 침묵하도록 강요하고, 자신의 폭력에 그들을 끌어들여 공조자로 만들고, 심지어는 피해자를 정신병자로 몰아서 그들에게 탄원서를 쓰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폭력을 마구 휘둘러도 제재를 받지 않은 것은 그가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힘은 선수 출전권에 영향을 주는 그의 메디컬 노트에서 나왔다.


하지만 팀 닥터에게 주어진 과도한 힘은 그의 폭력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만들었고, 그의 지속적인 폭력에 기름을 끼얹었다고 할 수 있다. 팀 닥터는 자신이 행한 폭력과 고인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고인에 대한 폭력행위를 인정하고, 그동안 있었던 모든 사실을 공표하고, 고인과 피해자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 그리고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가 이 모든 책임을 완수하고, 성찰하고, 자신의 폭력적 습관을 고치고, 자신의 폭력에 고통당한 고인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으로 느껴질 때, 비로소 그는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들은 피해자가 이제 괜찮다고 말할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의 종결은 피해자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책임을 회피한다면 그는 더 큰 처벌과 고통 속에 머물게 될 것이란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두 번째, 관리 감독할 책임이 있는 감독의 묵인과 자신이 행한 폭력은 팀 닥터와 선배로 하여금 폭력을 계속해서 행사하도록 부추기는 행위였다. 유추하건대 감독은 관습적으로 폭력을 해왔을 것이고, 아마 한국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매가 약이다. 맞아야 성과가 잘 나온다"라는 것을 들으며 선수 생활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이 폭력을 행사하면 누가 그 폭력을 저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감독을 믿고, 팀 닥터와 선배들이 더 폭력을 행사하였을 것이다. 다들 성과를 잘 내면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 조직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희생은 선수들이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조직은 그들의 폭력으로 와해되었고, 그들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며 다시는 선수와 감독 생활을 못하게 되었다. 바로 그들이 행한 폭력 때문에 말이다. 그들의 가장 큰 죄는 고인이 희생당하였다는 것이고, 고인의 가족들이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에 대한 사죄는 그들이 평생토록 짊어져야 할 것이다.


폭력을 방치함으로써 모두가 피해를 입었다. 어떤 폭력도 초반에 일어났을 때 바로 잡아야 폭력이 커지지 않는다. 폭력은 괴물과 같아서 처음 일어났을 사소한 폭력도 내버려 두면 모두를 집어삼키는 태풍이 되기 때문이다. 감독이 폭력을 종식시킬 수 있는 힘과 권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자신부터가 폭력을 행사했기에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음 고인이 폭력에 대해 저항하고 문제 제기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대한 사실을 공표하고, 고인과 가족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 그리고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고인이 감독에게 당했던 폭력과 팀 닥터의 폭력에 대한 묵인이 이루어졌을 때 느꼈을 그 고통과 절망감을 감독이 깨닫게 된다면 그때부터 감독은 다시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감독님에게: "팀의 성과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고 귀합니다. 선수는 선수 생활하러 팀에 온 것이지, 폭력을 당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감독님이 고인의 이야기를 듣고 폭력을 멈추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좀 더 안전하게 선수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 번째, 폭력에 저항하는 고인을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따돌리고, 팀 닥터의 폭력에 공조하고, 선배들이 고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계속된 팀 닥터의 폭력에 침묵했던 동료들이 폭력을 고착화시키고 구조화되게 만들었다.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이기에 조직이 받는 피해가 자신의 피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조직 문화가 있다. 그래서 조직 안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감추기에 급급하다. 모든 책임은 조직의 수장이 짊어지기에 책임자는 불미스러운 일을 더욱더 감추고 없애버리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폭력이 일어났을 때 폭력에 저항하는 피해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동료들이 침묵하는 것이다. 흔히 침묵은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문제일수록 침묵은 폭력을 키우고, 피해자에게 그들의 침묵이 가해자 편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저항해서 일으키는 불편함들이 싫어 외면하거나 오히려 가해자와 함께 저항하는 목소리를 없애려고 한다. 이 행위 모두가 가해자의 폭력에 동참하는 것이며 피해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료들은 알아야 한다. 조직 내에서 사소한 폭력이 묵인이 될 때 그 폭력은 커지고, 자신에게 폭력이 돌아올 뿐만 아니라 결국 조직을 와해시키는 것을 말이다. 현재 팀을 해체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온다. 만약 고인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서 함께 저항했더라면 팀을 지키고, 자신들의 생계와 꿈도, 그리고 트라이애슬론의 후배들을 위한 프로팀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폭력을 내버려 둠으로써 고인은 생명을 희생시켰고,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들은 처벌을, 침묵과 동조한 동료들도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프로 팀 하나가 없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폭력은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고인의 저항에 대해 침묵하고 동조했던 동료 선후배들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밝히고, 고인과 가족에게 사과하고, 법적 책임이 있다면 지는 것이 고인을 위한 길일 것이다.


조직 내에서 폭력(언어폭력, 물리적 폭력 등)을 당한 동료가 있다면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말자. 그래야만 구조화된 폭력을 끝낼 수 있고, 결국에는 조직이 좀 더 안전한 공간으로 바꾸고, 조직을 이롭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네 번째, 폭력 신고를 해도 응답하지 않은 책임 있는 기관들이다. 이전에도 선수들에 대한 폭력이 있었고, 사회 문제가 되었음에도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위원회만 만들고, 제대로 조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위원회는 허수아비였다. 고인이 신고했을 때 위원회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낱낱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모든 부당한 문제와 폭력의 문제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려야만 하는 것인가?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지지 않을 때 느껴지는 피해자의 절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관계자들도 합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고,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만 앞으로 재발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이렇게 구조화된 폭력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외쳐도 들어주지 않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가해자들과 동료들로 인한 지속적인 폭력은 살인이다.


조직 내에서 폭력을 당한 동료가 있다면 해줘야 할 말들과 위로가 되는 행동들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은 억울하고, 폭력 때문에 고통스럽고, 분노가 주체를 할 수 없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게 된다. 이럴 때 일상을 잃게 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지치지 않게 지지해주고, 격려해주고, 즐거운 일을 함께 해주자. 예를 들면, 함께 밥 먹기, 이야기 들어주기, 산책하기, 피해자가 좋아하는 취미들 함께 하기 등 일상 되찾아 주는 행동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폭력은 절대 안 돼. 내가 어떻게 너를 도와주면 될까?"

"많이 힘들지. 나는 너의 편이야. 함께 싸우자."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과 말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유와 상관없이 폭력은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피해자에게 폭력의 원인이 있다는 식의 말투와 비난, 폭력의 축소와 별거 아니라는 식의 말투, 침묵을 강요한다거나 정신병자로 몬다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로 비난하는 것은 이차 폭력을 가하는 행동이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뭐 별거 아닌 거 가지고 그래. 사회생활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힘든 거 알겠는데, 그걸 터트리면 다들 안 좋으니깐 좀 참는 게 어때?

"괜히 말하면 너만 힘들어져. 시간 지나면 없어지니깐 그냥 잊자."

"네가 행동을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야?"

"멘탈이 약해서 그런 거 아니야? 상담 좀 받아볼래?" (상담은 멘탈이 약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지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마치 피해자가 무슨 문제가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폭력을 당했을 때 해야 할 행동들


예상치 못한 폭력을 당하게 되면 당황스러워서 몸과 머리가 얼어버린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어느 조직, 사회에서든 폭력은 절대 용납되지 않기에 자신의 잘못 때문에 그 폭력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고 마음속으로 외치자. 주변 동료들과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알리자.


폭력을 당한 것을 알리는 것은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다. 동료들과의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친절했던 동료들이 외면하거나, 회피하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면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나서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폭력과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외로운 싸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참으면 그 폭력은 계속 일어나고, 자신 이외에도 다른 피해자가 계속 생긴다. 진지하게 자신을 위해줄 지인들과 함께 어떤 방법이 자신을 위해서 현명한 방법인지 생각해보자. 추천하는 것은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신고하는 것이다. 신고를 해야만 폭력이 종식되고, 불이익에 대한 보상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통이 너무 큰 것을 알기에 고심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만약 신고할 생각이 든다면, 힘들지만 폭력이 일어난 상황을 자세히 기술하고 문서로 작성하자. 작성이 끝나면 폭력을 다루는 기관에 신고하거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관에 신고하자. 그리고 가해자가 처벌받기 전까지 가해자를 배려하거나 이야기를 통해서 풀어가려고 하지 말자. 구조화된 폭력 속에서는 가해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거의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폭력적 행동을 그만두는 것처럼 보여도 다시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빠른 신고가 2차 폭력 피해를 막는 지름길이다.


비폭력적인 문화 만들기


캐나다 회사에서 입사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직장 내에서의 폭력, 성추행, 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받고 동의하는 것이다. 이 교육에서 말하는 것은 직장 내에서의 폭력(언어, 물리적)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이 일어난 사실이 확인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즉시 해고와 민형사상 법적 조치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폭력을 방치했을 경우 노동청에서 조사가 이루어지고, 경고를 받고 벌금을 내야 하고, 3번 경고를 받으면 회사의 법인이 취소된다.


"Zero Tolerance for Workplace Violence"

이와 마찬가지로 가족 내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폭력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폭력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고, 폭력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신고할 수 있고, 폭력을 행한 사람이 받는 처벌은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 말이다. 한국도 이제 "Zero Tolerance for all Violence"가 필요하다. 왜 우리는 가해자에게 관대하고 피해자에게 가혹한가? 왜 피해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문제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 그만두어야 정상이 아닌가? 폭력에 저항하자. 저항할 때 폭력은 멈춰질 것이다.


Alternative to Violence Project는 가정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비폭력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배우는 워크숍이다. 이 워크숍을 진행할 때 첫 번째 세션에서 하는 것이 "폭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각자가 생각하는 폭력에 대해서 나누는 것이다. 직접적인 구체적인 언어들과 행동들 뿐만 아니라 평소에 별것 아닌 것 같은 것도 누군가에게는 폭력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므로 가정, 학교, 직장에서 무엇이 폭력인지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가정, 학교, 직장에서 "나에게 폭력이란?" 주제로 이야기 나누어 보고 적어보자. 그리고 그 폭력들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이렇게 자신이 속한 가정을, 직장을, 사회를 비폭력적인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고인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본다.




커버이미지: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EC%8A%AC-%EA%B8%B0%ED%98%B8-%EC%9E%A5%EB%A1%80%EC%8B%9D-%EB%B8%94%EB%9E%99-%EC%A0%88%EC%97%B0-533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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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v.daum.net/v/20200704203908178

https://news.v.daum.net/v/20200704211653627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868287&plink=ORI&cooper=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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