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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집 Feb 04. 2019

엄마의 부엌

엄마의 부엌

엄마의 작은 부엌에 새하얀 찬장과 반짝반짝 빛나는 싱크대가 들어왔다. 엄마는 당신의 낡은 부엌을 오래전부터 바꾸고 싶어 하셨다. 부엌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한 달 반 배따는 과수원 부업일을 힘겹게 하셨다. 100만 원이 넘게 들어가는 목돈이 아빠한테 꽤나 눈치가 보이셨나 보다. 차곡차곡 쌓인 돈으로 드디어 당신의 부엌을 새로 꾸미셨다. 새원 목 식탁과 새 의자까지 갖춘 완벽한 부엌이었다. 모든 게 반짝반짝하다. 엄마의 힘으로 바꾼 엄마 부엌이 나는 유독 빛나 보였다.
 
엄마는 작은 부엌에 들어가면 어떤 음식이든지 뚝딱뚝딱 만들어주시곤 했다. 엄마의 넉넉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먹고 싶은 건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11살이었던 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오후 수업을 마치고 살짝 배고픔을 느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띵똥 띵동 초록색 우리 집 대문 앞 초인종을 눌렀다. 솔~솔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내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딸내미 왔어?”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끼~익하면서 열렸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더 강렬하게 내 콧속으로 한가득 들어왔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맛있는 냄새~." "손 씻고 쉬고 있어. 우리 딸내미 맛있는 거 금방 만들어줄게." 엄마는 빙긋 웃으며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나는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았다. 빼꼼히 고개를 빼내어 반짝반짝한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기름 냄비와 하얀 튀김가루를 한껏 뒤집어쓴 닭 조각들이 담겨있는 그릇을 번갈아 보았다. 엄마는 하얀 튀김가루를 온통 뒤집어쓴 닭다리 한 개를 집게로 집었다. 그리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기름 속에 퐁당 집어넣었다. 통통, 탁탁 냄비 속 기름은 맑은 연주 소리를 내었다. 엄마는 이때다 싶은 비장한 표정으로 두 개, 세 개, 네 개 닭 조각들을 집어넣었다. 통통, 탁탁 기름과 한데 어울려 덩실거리며 닭 조각들은 모두 노란색의 새 옷을 입었다. 8분 후 노릇노릇해진 닭 조각들을 튀김 망으로 건져 소쿠리에 넣어두었다. 기름이 쫘악 빠졌다. 유독 맛있게 튀겨져 보이는 닭다리를 하얀 접시에 담아 포크와 함께 내 앞에 놔주셨다. ”딸내미 맛 좀 볼래.?” 나는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응”하고 대답을 했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치킨을 한입 베어 물었다. 바싹 소리와 함께 하얀 볼이 실룩실룩 춤을 췄다. 입안 가득 고소함이 번졌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엄마 진짜 맛있어. 최고야 최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엄마도 먹어봐.” ”엄마는 이따가 먹을게.” 나는 엄마가 만든 치킨에 흠뻑 빠져버렸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입 한가득 치킨을 물은 채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엄마는 빠른 손놀림으로 닭 반마리를 더 튀겼다. 다 튀겨진 치킨에 키친타월로 살짝 덮은 후 부엌을 정리하셨다.

띵똥 띵동 초인종이 분주하게 울려 퍼졌다. “호야 왔나 보다.” 엄마는 나를 바라보며 “오빠 문 열어줘.”라고 말하셨다. 나는 쪼르륵 달려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끼익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두 살 터울인 작은 오빠가 “학교 다녀왔습니다. 우와 치킨 냄새다. 야호~.”라며 소리를 질렀다. 오빠는 책가방을 방안에 내던지고 부엌으로 바로 달려갔다. 엄마랑 나는 눈이 마주쳤다. 빙긋 한아름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엄마의 작은 새 부엌에서 함께 먹던 치킨, 탕수육, 햄버거, 오므라이스가 가끔 생각난다. 지금은 주문하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라 엄마는 그 음식들을 만들어주시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다른 음식들을 뚝딱뚝딱 만드시는 엄마가 여전히 나는 신기하다. 어린 나의 눈에는 엄마의 작은 새 부엌이 요술 방처럼 느껴졌다. 무엇이든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음식들. 어쩌면 엄마는 진짜 요술을 부리 신건 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으로 버 부려진 요술 음식들. 엄마는 부엌에 들어가면 모든지 만들어내는 훌륭한 요술 요리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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