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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가계부 : 월급의 벼랑 끝에서

C : (건축설계) 퇴직한 건축연구자 • 유학준비생, 남, 31세

by 모초록

찬구들과 일본여행 숙박비 3박

233,783


로우로우 안경테 + 안경알

196,000



2024년 6월 17일 마지막 근무를 끝으로 퇴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마치 벌금형에 처한 양, 나는 돈에 대한 양가감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어영부영 6월을 보냈다. 벼랑 끝에 서게 되는 마지막 월급날은 7월 10일인데, 벌써부터 그는 앞으로 돈을 다시 못 벌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일상적으로 소비하던 것들이

크고 작게 변화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과의 일본 여행

나까지 6명의 중·고등학교 친구들이랑은 왜인지 의리로 계속 연락하고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직업도, 지역도, 서로 다르게 자란 지 10년이 넘어가는 친구들이기에 의견차이로 카톡방 안에서 말이 많아지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지만13 막상 만나면 즐겁게 술 한잔 걸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막역한 친구들이기에 소중하다. 전에는 자기 비하의 유머로 병신클럽이라고 이름 붙였다가, 너무 비하하는 의미로 서로를 여기는 게 불만이었기에 몇 년 전부터는 똑똑충 모임으로 개명하였다.


그들 중 한 명이 11월에 결혼한다. 우리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결혼 전에 해외여행을 예비 신랑이 기획하였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해외여행을 가자는 취지였다. 한 명은 개인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나머지 5명이 기타큐슈와 후쿠오카를 다녀왔다.


서로 다른 5명이 모이니 공유할 수 있는 주제는 먹는 것과 사는 것이었다. 3박 4일의 일정은 식사와 쇼핑으로 버무려졌다. 하루에 최대한 다양한 것을 먹어보자는 치기 어린 목표로 하루에 4끼 5끼씩 먹었다. 술도 빠질 수 없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쇼핑을 하는 것이다. 특히 예비 신랑이 된 그의 취미가 쇼핑에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도 꾸며주겠다며 소비를 부추겼다. 나 역시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후쿠오카 텐진의 HUMAN MADE 매장에서 주민 씨와 나눠 입을 커플티를 사게 되었다. 적은 금액은 아니었는데, 지갑에 구멍이 난 것인지, 아니면 마음의 구멍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호기롭게 티셔츠 두 벌을 사서 돌아왔다.


2월부터 계획했던 여행이었기에, 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틈틈이 항공권을 예약하고, 환전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한 번에 지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니 더욱 소비에 대한 심리적 허들이 낮았던 것 같다. 남은 것은 수많은 영수증과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진들… 그것대로 좋은 추억이 되었다.

6월_대지 1.jpg 일본 2박 3일 경비


나를 위한 퇴직 기념 선물 — 시계와 안경

퇴직금 명목으로 목돈이 주어진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무언가 다짐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돈으로 얼마간의 기간 동안 어떻게 생활해야지, 얼마를 저축하고 얼마는 투자해 둬야지 하는 계획을 틈만 나면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은 큰돈의 일부는 나를 위해서 흔쾌히 써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벼르고 있던 손목시계와, 안경을 구매하기로 했다.


찾고 있던 시티즌 손목시계는 일본 여행 동안 직접 구매하고 싶었지만, 이미 발매된 지 오래되어 취급하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여행에서의 들뜬 마음이라면 쉽게 구매하겠지만, 국내에서 주문하려면 명분이 필요했다.


그러다 귀국하자마자 구실이 생겼다. 이전부터 갖고 있던 손목 시계를 당근마켓에 올려놨었는데, 누군가 구매하기로 한 것이었다. 판매한 시계는 세이코의 주황색 다이얼을 가진 다이버였는데, 색깔이 강해서 좋아했었고, 색깔이 강해서 팔리지 않던 것이었다. 나에게 마치 악성 재고처럼 따라다니던 시계였기에 네고 요청도 받아주고 얼른 처분해 버렸다.


사실은 시계 구매가 먼저이고, 판매는 그 뒤였다. 귀국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소비 여행의 들뜬 마음에 관성이 있어서 일단 주문해 놓고 생각하자는 마음이었다. 당근 문의가 타이밍 좋게 들어와 주어서, 과소비를 조금 막을 수 있었다.


안경은 예전에도 착용한 적 있는 로우로우의 안경을 다시 구매했다. 이번이 3번째 구매인데, 가볍고 튼튼하면서 스타일이 있어서 다시 찾게 되었다. 프레임 위쪽은 각이 져 있지만, 아래는 둥그런 모양이다. 그 형태적 복합성이 내 얼굴형하고 잘 맞아주는 듯하다.


6월-02.jpg 시계와 안경


생존에 대비하기

퇴사 이후 가장 두려운 것이 소득이 없어지는 것이다. 6월 17일 마지막 근무 이후 연차 기간에 소비의 폭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내 가계 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식비를 줄여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하게 먹을 식재료를 구비해서 틈틈이 요리하는 것이었다. 아침은 삶은 달걀 2개와 견과류, 토마토와 커피 등으로 때운다. 일본 여행에서 경험했던 만만한 낫토를 번갈아 먹어주면서 지루함을 덜어낸다. 점심은 든든하게 요리해 먹는다. 냉동 닭가슴살을 녹이고 파스타 같은 것을 해줘서 배부르게 먹는다. 저녁은 밖에서 약속이 없다면 집에서 가볍게 먹는다. 또다시 냉동 닭가슴살을 먹거나, 볶음밥 같은 걸로 가볍게 먹어준다. 양배추, 토마토, 당근같이 금방 상하지 않는 것들로 냉장고를 채운다.


식재료를 다시 구매하는 주기를 체크해 보기로 했다. 달걀과 토마토, 채소 등은 사거리에 있는 야채가게에서 사면되고, 냉동식품은 쿠팡프레시를 활용해서 같은 것을 반복해서 살 수 있다. 냉장고에

종이를 하나 자석 집게로 붙여 두어서 얼마를 얼마 만에 쓰는지 체크해 보기로 하자. 아직은 식비로 얼마나 쓰게 될지 파악이 되질 않는다. 특히 쿠팡에서 주문할 때면 이런저런 다른 것도 알고리즘에 등장해서 소비에 현혹되기 마련이다. 그런 식으로 바질페스토, 토르티야 등을 등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외 소비 항목

6월-03.jpg 그 외 소비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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