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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로소 Mar 30. 2021

1-1. 엄마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이유[수정02.08]

다른 세계관 속 두 여인




코로나19 사태로 한달이 넘게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턱없이 길어졌다. 간만에 책도 꽤 많이 읽고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게임도 하고 밀린 드라마도 본다. 아아, 계속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행복은 다음과 같은 순간에 날카롭게 깨진다.


"이것 좀 봐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엄마가 휴대폰을 들이밀며 말한다. 일단 엄마가 내 방으로 들어오면, 아니, 나에게 말을 거는 순간부터 내 기분은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듣기도 전에 듣기 싫다. TV를 보러 거실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트로트 가수를 선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며 열심히 한명 한명 사연을 소개해 준다. 나는 제대로 대꾸도 없다가 미간에 내천자를 그리며 말한다.


"엄마, 그냥 나 신경쓰지 말고 TV 봐."


그러면 엄마는 조금 분한 얼굴로 묻는다.


"그럼 우리가 가족인 이유가 뭐야?"


이런 나도 어릴 때는 유명한 마마걸이었다.


“어휴, 이 집 딸은 엄마 껌딱지네? 우리 애는 중학교 들어간 이후로는 지 엄마 거들떠도 안 보던데.”


친구처럼 붙어다니는 모녀의 모습이 예쁘다며 칭찬하던 단골 가게 사장님들의 말. 그게 엄마의 자부심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엄마는 정말 기분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더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종종거리며 따라다녔던 지루하고 애끓는 시간들을.


스무살 때까지도 엄마에게 나는 딸이자 베프이자 남편이자 감정쓰레기통이었다.


돌아보면 엄마는 나에게 궁금한 것이 거의 없었다. 아주 조금 남아있는 관심은 오로지 ’돈‘과 ‘외모’에 관한 것 뿐이었다. 이를 테면 나의 연봉, 내가 산 물건의 가격, 내가 가진 조금의 여윳돈, 내가 어딜 가서 손해보진 않는지 하는 것들. 나의 체중과 부스스하게 멋대로 자란 머리카락, 다 떠버런 어색한 화장 같은 것들.


내 꿈도, 인생 목표도, 버킷리스트도, 사랑도, 불안도, 존재적 갈증도 엄마의 관심 밖이었다. 아니, 엄마가 모르는 세계였다. 먹고 사는 것 외에는 관심줄 여력조차 없어 보였다. 도저히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의 문제들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거였다.


‘그러게 어쩌니.’


다였다. 공감도, 해결책 제시도 없었다. 그나마도 ‘그정도 안 힘들고 일하는 사람은 없다’에서 나아간 결과이니 다행이라고 할까.


우리가 어릴 때 엄마는 종종 매를 들어 우리를 훈육했지만, 조금 커지고 나서는 방법을 달리했다. 자기학대가 그 방법이었다. 한 번 핀트가 나가면, 엄마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당신 몸에 물을 뿌렸다. 한겨울에, 집 내부 중 가장 차가운 공간에서 온몸에 찬물을 뿌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엄마에게 매달렸다. 그러면 엄마는 단호한 태도로 어린 남매를 내보내고 문을 걸어잠궜다. 문을 온통 두드리며 잘못했다고 빌면 엄마는 아예 집을 나가버렸다. 한시간 남짓 엄마를 찾아 엉엉 울며 거리를 떠돌고 있으면 엄마가 나타나 동내 창피하니 울지 말라고, 거칠게 팔을 잡아끌어 집으로 갔다. 그것은 우리가 ‘당하는 일’이었다. 무기력하게 당하는 소통 방식이 자리를 잡아갔다.


그렇게 자란 나는, 엄마가 ‘소통’을 요구할 때면 당황하곤 했다.


소통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일상적인 대화나 질문도, 과거를 추억하는 것도, 성장과 영혼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도, 표정이나 스킨십도 소통이 될 수 있다. 엄마의 소통은 주로 마이너스 에너지를 뿜는다. 마땅한 권리를 챙겨주지 않는 회사, 불만스러운 동료들과 지인들, 일가 친척 내 좁은 입지, 나아지지 않는 살림, 길가다 스친 여자들과 티비 속 여자연예인들을 향한 외모 평가. 그래, 누군가는 그런 대화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지만, 나에게 엄마와의 소통은 9:1의 비율로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내야하는 심리적 노동에 불과했다. 내가 그 ’리액션봇‘ 역할에서 벗어나려 하면 엄마는 수십년의 서러움이 올라와 폭발해버렸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넌 그러면 안 되지.‘


엄마는 매번 눈으로, 입으로, 몸짓으로 그렇게 말했다.


더이상은 안 되겠다. 그걸 깨달았을 때, 나는 엄마의 세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좋은 친구 ’만화책‘과 ‘이야기들’로 나의 세계관이 점차 형성됐다. 대학에 들어가고, 더 많은 사람들과 서사를 접할 수록 세계는 끝없이 팽창했다. 엄마의 세계를 찢거나, 이대로 짓눌리거나. 무기력함을 벗어던지고 나의 세계를 지키고 싶어졌다.


돌아보면 내 세계가 피어나는 동안 나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얌전히 지나간 사춘기를 넘어 대학시절이 끝날 무렵부터 오춘기가 왔다. 한 번은 대판 싸우다가 두 모녀가 앞다투며 집앞 냇가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 동생이 놀라서 우리 둘을 건져 올렸다. 싸움의 주기가 짧아지자 동생은 나와 엄마의 사이에서 자주 무감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나를 더 재촉했다. 이해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그렇게 작은 세계가 요란하게 완성되어갈 무렵, 나는 집을 나왔다. 엄마의 심장도 요란하게 찢겨졌다.


우리는 단절됨으로써 차라리 나아졌다. 피부와도 같았던 연결을 끊어내자 ‘혈연과 도리’라는 느슨한 연결만 남았다. 내가 엄마에게 더이상 무언가 기대하지 않듯, 엄마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도록 천천히 꾸준히 엄마를 실망시켰다. 무기력하기만 했던 아이는 단단해지기위해 나를 무르게 만드는 것들을 내 삶에서 도려냈다. 그게 당신이라고 해서 크게 실망하지 말기를. 우리 모두는 무언가로부터 끊임 없이 자신을 지키고 있으니까. 아무튼,


엄마가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졌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 이어서. 엄마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이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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