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eraser)

당신이 지우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by Dr Kim

만일 자신의 삶에서 티끌만한 흔적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지워지는 마법의 지우개를 가지고 있다면 무엇을 지우고 싶은가?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좋은 감정, 아름다운 추억 혹은 자랑스러운 일 등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지움의 대상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것들이 많을 것이다. 상대방과의 불편한 감정일수도 있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일수도 있다. 부끄러웠던 일이나 상처받았던 일 그리고 잘못된 선택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이처럼 살다보면 지우고 싶은 것들이 종종 발생하지만 생각만큼 잘 지워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지우려고 애를 쓸수록 더 선명해지는 경우를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이는 인지언어학자로 알려진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을 때 오히려 코끼리가 더 많이 생각나는 것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지우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처음부터 지울 필요가 없는 일만 선택해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으로 편지를 써 본 경험이 있다면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던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 편지를 보게 될 사람이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거나 중요한 내용이라면 이와 같은 행위는 더 많이 반복되기도 한다.


썼다가 지우기를 수차례 하고 나면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내용을 그 때 그 때 지우기 위해서는 지우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지우개는 자신의 대인관계와 일 그리고 삶에 있어서도 필요하다. 그 속에서도 지워야 할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지우개의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멘토(mentor)와 책이다. 어쩌면 지우개보다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깨끗하게 지워주기 때문이 아니다. 지워야 할 것을 많이 만들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멘토와 책은 이미 벌어진 일보다는 미래에 발생한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지나간 일들을 지울 수는 없지만 시간이 흘러 지난날을 돌이켜봤을 때 지워야 할 것들을 상당 부분 최소화시켜 줄 수 있다.


또한 멘토와 책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나 행동 또는 선택의 결과에 대해 일종의 미리보기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먼저 경험한 사람과 사례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멘토와 책은 해결책보다는 예방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자신의 멘토와 책은 저절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스스로 준비하고 찾아나서야 만날 수 있다.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분명히 주변에 있다. 아울러 먼저 손을 내미는 것 등과 같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와 행동을 병행한다면 더 빨리 접할 수 있다.


옛 노랫말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삶의 흔적 역시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지워도 되겠지만 방법이 있다면 애당초 지워야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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