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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하는 교대생 Oct 27. 2024

딥페이크 때문에 혼자 힘들었을 때 쓴 글


"너는 네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

질문을 받고 답할 수가 없었던 날에 쓴 글.



나는 요즘 내가 답답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즘 주로 느끼는 기분은 분노, 슬픔, 무기력, 답답함, 불안, 막막함,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다.


휴학하기 전과 상태가 아주 비슷하다.

그때 내 눈에는 생기가 없었고,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고, 목소리에는 온기가 없었다.

모두 없애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어디로든.

그런데 그러기에는 또 너무 무섭고 불안하고 외로워서 또 우울했다.


이런 기분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처음 느낀 건 아마 고등학생 때였을까.

나는 미치겠는데 주변에서는 그런 나 때문에 미치려고 한다.


나는 내가 아니라 세상이 미친 거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 그러려니 하고 살지 못하는 내가 미친 거라고 한다.

나는 다들 어떻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너무 답답하고 열이 나고 머리와 마음이 터질 것 같다.


고등학생 때 대학이 없는 나를 상상하면 너무 불안했다.

다 괜찮을 것 같기도 했고 잘 살 수 있다고 스스로와 사람들에게 계속 말했지만,

밤이 되면 외롭고 불안하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 명이라도 옆에서 괜찮다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너무 힘들면 쉬어도 된다고 말해줬으면 했다.

그때 내 이야기를 들어줬던 건, 가장 진지하게 나를 대해줬던 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공부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데 내가 겪는 문제에 화를 내주고 공감해 주고 나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그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당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그러기가 너무 어려운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내가 겪은 부당함을 해결하고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같이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렵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사람은 다 다르다.

그걸 매일 깨닫는다.

 

한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때가 많다. 

대화하다 보면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건지 너무 헷갈리게 된다.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세상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싶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바꾸고 싶다.

그런데 요즘은 지치지 말고 연대해야 한다는 말보다 개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더 크게 다가온다.

계속 부정했던 말인데 몇 차례 마음이 꺾이고 나니 그런가 싶다.

내가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주변에 알리고, 청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게 소용이 있나 싶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도 세상이 어떻든 내가 행복하고 싶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나는 계속 세상의 일에 상처받고 실망하고 심하게 아파한다.

포기를 한다고 괜찮아질 거 같지 않다.

더 우울하고 더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간단하게 내가 사는 세상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자주 든다.

여기를 떠나면 최소한 이런 일은 없지 않을까.

우리보다 몇십 년 빨리 고민을 시작하고 문제를 해결해온 곳에 가서 말이 통하는 채로 살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안다.


결국 나는 그냥 내가 태어난 곳에서 인간답게 나답게 잘 살고 싶은데.

그게 이렇게 어렵다는 게.

그냥 아무것도 모르던 때로 돌아가서 아무 문제에도 관심 가지지 않고 살면 편할까?

이제 나는 공부하기가 무섭다.

힘도 없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유독 소심하고 행동이 느렸던 나는 매 순간 용기를 내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했다.

아무 걱정과 분노 없이 마음 편하게 쉰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태어나 자랐을 뿐인데 이곳에서 자라 이런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고,

아무리 무언가를 잘 해내도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항상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더 잘하려고 했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잘했다.

어디서든 무엇으로든 1등을 하고 나를 증명하려고 했다.


학생 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

모든 대회에 다 나가고, 일이 없으면 만들고, 학교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보려고 애쓰고, 나쁜 말을 듣기 싫어 악착같이 공부했다.

동시에 학교가 너무 싫어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몸이 두 개, 자아가 두 개인 것 같았다.


그렇게 졸업한 뒤 대학에 왔고 대학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고등학생 때의 다짐과 달리 너무 열심히 살았다.

미뤄뒀던 딴짓만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나는 그러기에 너무 성실했고, 눈치를 많이 봤고, 공부를 좋아했다.


나의 장점은 성실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임감.

그리고 따뜻함과 다정함. 애정과 사랑.

그리고 내 서사, 나만 가지고 있는 이야기, 그를 통해 얻은 마음가짐이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게 좋은 건지 모르겠고, 옳은 건지 모르겠고, 내가 갖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비어버린 것 같다.

힘도 비어버린 것 같다.

이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게 나를 잃는 거였는데.

나의 분노와 슬픔과 서사를 잊는 거였는데. 

요즘은 좀 잃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아닌가 되찾고 싶은 건가.


내 장점을 생각해 보려다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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