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에 빠져도 괜찮아! 굴러만 가면 어디든 가겠지!
여름 저녁의 골프장은 낮과는 다른 특별한 분위기를 준다. 태양이 서서히 지며 석양이 번져가는 풍경 속에서 홀을 돌다 보면, 골프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인생의 작은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그날 저녁, 우리는 더위가 한풀 꺾인 오후 늦게 라운딩을 나섰다. 따가운 햇볕은 이제 은은한 오렌지빛으로 변해 코스를 물들였고, 코스는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빛났다.
라운딩을 하며 저 멀리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는데, 문득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공을 치고 그 자리에 잠깐 서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매일 정신없이 달려오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함께 걷던 친구가 “야, 오늘은 스코어 생각하지 말고 저녁 하늘이나 즐기자”라며 웃었고, 나도 그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이윽고 코스를 한두 홀 남겨둔 시점에서 태양은 거의 지평선에 다다랐다. 그 순간, 공을 치려는 자세를 취하고 고개를 드는 찰나에 오렌지빛 하늘과 푸른 그린이 어우러진 광경이 펼쳐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잠시 스윙을 멈추고 석양을 바라보았다.
한 친구가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이렇게 서서 석양 바라보는 것도 인생이네”라고 말하자 모두가 조용히 석양을 바라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홀을 치며 공이 빛나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이 라운딩이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는 늘 바쁘고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오늘의 라운딩에서는 오히려 모든 걸 내려놓고 잠깐씩 하늘을 바라보는 그 여유가 참 귀하게 느껴졌다.
공이 그린에 떨어져 굴러가는 것을 보며, 우리도 언젠가 인생의 마무리를 향해 천천히 굴러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묘하게 쓸쓸하면서도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날 석양 속 라운딩은 골프 이상의 의미로 남았다. 어쩌면 인생도 이렇게 한 홀 한 홀 천천히 즐기며, 때로는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또 함께 걸어가는 여유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석양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