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에 빠져도 괜찮아! 굴러만 가면 어디든 가겠지!
가을밤, 포천의 필로스CC에서 부부 동반으로 야간 라운딩을 즐기기로 했다. 친구는 회사에서 직책이 본부장으로 일하는데, 우리는 평소 그를 ‘우리 본부장님’이라 부르며 장난치곤 한다. 이날도 그의 아내에게 “오늘 본부장님 덕에 제대로 즐기네요, 사모님!” 하고 인사했고, 그녀는 웃으며 “호강하네요, 정말!”이라고 화답했다.
라운딩이 시작되자마자 아내와 나는 어둠과 싸우며 코스를 따라 걸었다. 공기 중에 가을 특유의 서늘함과 함께 은은한 냄새가 섞여 들었다. 축사에서 흘러오는 듯한 냄새에, 누군가가 은행나무 냄새까지 더해 “이게 자연의 냄새”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유독 본부장님의 사모님만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홀을 지날 때마다 “아니, 여기 냄새 너무 강한 거 아냐?”라며 칭얼거렸고, 우리 모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 그 정도야 뭐 괜찮지 않아요?”라며 코를 슬쩍 움켜잡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쌀쌀한 바람이 스윙에 따라 스쳐갔지만, 공보다도 더 자주 언급된 것은 바로 그 냄새였다. “여기 진짜 어디서 나는 냄새지?” 하고 다시 묻는 친구 아내에게 우리는 “아니,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본부장님 부부만 느끼시는 고급 후각이야!”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친구도 웃으며 “아이고, 고급 후각이면 뭐해, 여기서 썩어가고 있는데!”라며 우리와 함께 웃음을 나누었다.
어둠과 추위, 그리고 은은한 냄새 속에서도 우리는 가을밤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18홀을 끝냈다. 마지막 홀을 지나며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다신 이런 야간 라운딩 안 온다!”라고 선언했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단톡방에 올라온 메시지로 또다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탁월한 구장 선택으로 여유 있고 분위기 좋고, 재밌고, 저렴하게 잘 놀고 왔다. 캐디피 줘야 하는데.” 여기에 다들 웃음 이모티콘을 한가득 보내며 “역시 본부장님다운 마무리”라며 피곤했던 하루의 마침표를 찍었다.
가을밤 어둠 속에서, 그리고 예상치 못한 냄새 속에서 함께한 이 라운딩은 단순히 골프가 아닌 추억 그 자체였다. 우리 모두가 함께 느낀 이 시간이야말로 진짜 라운딩의 묘미임을 깨달았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냄새의 주인공은 은행이었다.
“어둠과 추위, 그리고 뜻밖의 냄새까지도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은 오래 기억될 추억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