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마음들
켰는데, 아무도 안 믿더라.
- 깜빡이 -
도로 위에서 깜빡이를 켜는 건 작은 약속 같은 거다.
“이제 내가 방향을 바꿀 거야” 하고 주변에 신호를 보내는 일.
하지만 정작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려 하면, 도리어 더 좁아지는 틈에 놀란다.
깜빡이를 믿고 길을 내어줄 거라 기대했던 내 마음은, 점점 의심으로 가득 찬다.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도 그 신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깜빡이는 결국 믿음의 문제다.
내가 신호를 보냈을 때 누군가 그것을 믿어주길 바라는 마음.
내가 바꾸려는 방향을 지지해 주길 바라는 작은 기대.
하지만 길 위의 세상은 그리 친절하지 않다.
신호는 무시되고, 의심과 경쟁 속에서 방향을 바꾸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차선 변경은 마치 우리의 인간관계 같다.
내가 의도를 밝히고 방향을 알려도, 상대가 그것을 믿고 받아줄지는 알 수 없다.
“진짜 저 방향으로 가려는 걸까?”라는 의심을 받을 수도, 아니면 “지금은 내가 먼저”라는 반응을 만날 수도 있다.
"깜빡이는 신호지만, 결국엔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는 일이 된다."
그럼에도 깜빡이를 켠다는 건 나름의 용기다.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세상에 밝히는 일이니까.
아무도 믿지 않아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보여주는 작은 선언이니까.
“켰는데, 아무도 안 믿더라.”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깜빡이를 켜고 나아간다.
누군가 믿어주길 바라며, 아니면 믿지 않더라도 내가 내 방향을 정했다고 확신하며.
"깜빡이는 믿음을 얻는 게 아니라, 내가 내 길을 밝히는 일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깜빡이를 보고 길을 내어주는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깜빡이를 끄지 않는 것, 그게 내 작은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