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마음들
의논 끝에
그녀의 의견으로 결정했다
-합의-
우리는 그날도 아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맞지 않아?"
"아니, 나는 이렇게 생각해."
"근데 그건 좀 비효율적이지 않아?"
"그래도 그게 더 따뜻하잖아."
…이쯤 되면 대화라기보다 체면을 건 조용한 전쟁이다.
논리는 내 쪽에 있었고, 데이터도 내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진짜로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게 하자.”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속으로 외쳤다.
드디어! 인간 승리!
마치 체스에서 상대 킹을 몰아넣고, 우아하게 ‘체크메이트’를 외친 기분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우리 집엔 그녀가 말했던 그 방식대로
모든 게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내린 결정은
“그래, 너 말대로 하자”는 그녀의 말과 함께
포스트잇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렸다.
순간 알았다.
내가 한 결정은, 그녀가 결정하게 놔둔 방식이었다는 걸.
그게 바로 우리의 합의다.
의논 끝에 그녀의 의견으로 ‘우리가’ 결정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섬세하고 은은한 마법.
웃기지?
근데 묘하게 따뜻하고, 이상하게 편하다.
싸우지 않아도 되고,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이기지 않아도, 잃은 건 하나도 없는 기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다음번엔 진짜 이긴다.”
물론 그 다음에도, 의논 끝에
그녀의 의견으로 결정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난 또 내가 이긴 줄 알았지.
그다음에도 우리는 의논 끝에 그녀의 의견으로 결정했다.
의논 끝에 그녀의 의견으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