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즘 제일 오래 마주 보는 존재는,
가족도, 친구도, 거울도 아니고…
모니터라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켠다.
대충 비밀번호를 누르고,
눈은 반쯤 감긴 채로
뉴스든 메일이든 뭐든 하나는 켜 놓는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일할 땐,
모니터 두 대,
심하면 태블릿까지 동원해서
정신없이 탭을 넘긴다.
회의하고, 메모하고, 검색하고,
그걸 또 정리하고, 다시 검색하고.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근데 밤이 되면 또
그 앞에서 드라마를 보고,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딴 걸 검색하고,
그러다 멍하니 앉아 있게 되는 시간들.
그러니까,
하루 중 진짜 '나'와 마주하는 순간은
어쩌면 사람들 사이가 아니라
모니터 앞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도 보고,
회의도 하고,
쇼핑도 하고,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걸
나는 이 네모난 화면을 통해 보고 있다.
그런데 가끔은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모니터,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많이 봤을지도 모른다.
기분 좋을 때,
얼굴 살짝 붉어지며 웃는 내 모습.
지칠 때,
턱을 괴고 한숨 쉬던 그 표정.
울다가 갑자기 웃음 터졌던 그 순간까지.
심지어
식은땀 흘리며 작업하던 날 밤,
"살려줘…"
중얼거리던 것도 봤을 거다.
나는 이걸 그냥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면
모니터는 내 일상을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바라본 존재였다.
다른 사람은 몰랐을 내 표정들을
모니터는 항상 정면에서 지켜봤을 테니까.
내가 나를 볼 때보다
더 오랫동안, 더 자주.
한 번은 그런 적도 있다.
슬퍼서 울면서 영상을 보다 말고
정지된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내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렇게 울고 있었나?' 싶어서.
그 순간,
모니터에 비친 내 모습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위로해주고 싶을 만큼.
나는 세상을 보기 위해
모니터를 켜지만,
모니터는 그 시간 내내
나만 바라본다.
한 치의 시선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검색창에는 수많은 고민이 쌓이고,
작업창에는 미완의 문장들이 떠다니고,
재생 중인 영상보다
그걸 바라보는 내 표정이
더 많은 얘기를 한다.
가끔은 ‘꺼야지’ 하고
전원 버튼을 누른 후에도
어딘가 켜져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모니터 화면은 꺼졌지만,
그 속엔 아직도
내 하루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세상에 나만큼 나를 오래 본 존재가 있다면
그건 아마,
이 모니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세상을 보기 위해
모니터를 켰고,
모니터는 아무 말 없이
내가 돌아올 걸 알고 있었던 듯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커서를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