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누군가가 종이에 조용히 낙서를 시작할 때면,
나는 슬쩍 그 손끝을 바라본다.
동그라미.
그 안에 또 동그라미.
아무 말 없이 종이에 작게, 천천히, 반복되는 그 원들.
누군가는 ‘심심해서 그렸나 보다’ 하고 넘기겠지만,
나는 안다.
그건 그냥 그린 게 아니라
마음속 무언가가 삐죽 튀어나온 거라는 걸.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끄적였어”라고 말하지만,
진짜 아무 생각 없을 땐
사실 손도 안 움직인다.
아무 문제없는 사람은
낙서 대신 딴짓을 하지.
회의 시간, 수업 중, 전화 통화하면서
종이 한 귀퉁이에 조용히 그려지는 모양들.
그건 종이 위의 말 없는 신호다.
특히 동그라미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감추려는 몸짓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던 날,
누가 볼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
손만 움직였다.
글은 쓰지 않고 모양만 그렸던 순간들.
직선, 점, 삼각형, 그 사이 어딘가에
무의식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숨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낙서는 말보다 솔직했다.
말은 돌려 말할 수도 있지만
손은 거의 반사처럼 움직이니까.
마음이 쓱 하고 흘러나오면
펜은 그걸 따라가고,
나는 그제야 내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가 낙서를 시작하면
나는 그 그림보다 그 마음을 본다.
“지금 이 사람, 괜찮은가?”
“뭔가 말하지 못한 게 있지는 않나?”
모양은 엉성해도
그 안의 감정은 꽤 단단히 얽혀있다.
지워도 흔적이 남는 게 낙서고,
말하지 못한 마음의 사본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누군가가
말없이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으면
나는 조심스레 묻고 싶어진다.
“지금… 괜찮은 거 맞아?”
혹시 모른다.
그 동그라미 속에
숨겨놓은 마음이
그 말을 기다리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