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오늘도 안경알을 몇 번이고 닦았다.
손끝에 김이 서리고,
소매 끝으로 쓱쓱 문지르며 혼잣말을 한다.
“또 먼지야?”
“왜 이렇게 잘 더러워지지…”
근데 닦아도 닦아도,
어딘가 선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경을 벗고 유심히 들여다봤다.
기름 자국, 지문, 숨결.
그리고…
뭔지 모를 피곤함.
아, 이건
렌즈가 더러워서가 아니라
내가 지친 거였구나.
회의 내내 쓰고,
지하철에서도 쓰고,
사람 얼굴도 보고,
화면도 보고,
길도 보고,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계속 쫓아가며 애썼던 하루.
그걸 다 지나고 나면
안경엔 피로가 쌓여 있었다.
마치 내 하루가
투명한 렌즈 위에
조용히 눌러앉아 있는 것처럼.
그게 먼지일 수도,
기름일 수도,
그냥 숨결일 수도 있지만
진짜로 보이지 않는 건
아마 마음의 흐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신기하다.
마음이 흐리면
세상도 흐릿하게 보인다.
눈이 피곤하면 시야가 흔들리고,
머리가 복잡하면 안경도 더러워진다.
이쯤 되면 안경이 아니라,
내 하루가 탁해진 거다.
그래서 요즘은
안경이 잘 안 닦일 때면
물티슈를 꺼내기 전에
내 기분을 먼저 들여다본다.
‘지금 내가 지쳐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세상이 잘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가 보기 싫은 걸 억지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잠깐,
안경을 벗는다.
눈도 감는다.
커튼 틈으로 들어온 빛을
그냥 그대로 맞아본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 보면
눈앞에 있던 흐릿함이
조금은 말랑해진다.
마음도, 시야도
살짝은 투명해지는 느낌.
안경은 참 착하다.
내가 지쳐 있을 땐
나보다 먼저 흐려진다.
그걸 핑계 삼아
나는 비로소
나를 들여다볼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숨 한 번 돌리고 나면,
다시 안경을 쓰고,
조금은 또렷해진 시선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다음에 안경이 잘 안 닦이면
그냥 렌즈 클리너를 찾기 전에
자신한테 먼저 물어보자.
“나 오늘… 좀 힘들었지?”
그 물음 하나면,
조금은 더 부드러운 눈으로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