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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이어폰

by 라이트리
11 이어폰.png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려는데
갑자기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린다.
처음엔 ‘고장 났나?’ 싶어서
한쪽만 뺐다가 다시 꽂고,
어플도 다시 실행해 보고,
전원도 껐다가 켜보고,
급기야 인터넷까지 점검해 본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음악은 계속 지지직—
분명 노래는 재생 중인데
그게 귀에 온전히 들어오지 않는다.


그 순간, 문득
‘사람 마음도 이럴 때가 있지’ 싶었다.


나도, 너도,
어쩔 땐 그런 날이 있다.
대화는 분명하고 있는데,
뭔가 자꾸 엇박자가 난다.
말은 들리는데 마음은 안 들리고,
의도는 그렇지 않았는데 결과는 삐걱거린다.


"괜찮아"라는 말에
괜찮지 않음이 묻어나고,
"아니야"라는 말에
사실은 그게 맞다는 걸 눈치채고.
상대의 말이 지지직거리는 전파처럼
내 감정에 정확히 도달하지 못하고
희미하게 튕겨 나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고장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연결 상태가 나빠진 것일 뿐.


마음의 회선도
가끔은 접촉 불량이 올 수도 있는 거니까.


툭 끊어지는 집중력,
묘하게 서운한 말투,
애매하게 올라오는 울컥함.
이유를 설명하긴 어려운데
내 감정이 지지직거리기 시작하는 날.


그럴 땐 억지로 이어폰을 꽂아두지 말자.
음질이 나쁠수록 오히려 더 거슬리니까
그냥 일단 듣기를 멈추자.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다.
그런 날이면
기기를 재부팅하듯
자신을 다시 연결해보려 해 보자.


음악을 끄고,
화면을 덮고,
잠깐 창문을 열자.
바람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때까지는
그 어떤 소리도 틀지 않는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말이 부정확해질 것 같을 때엔
그냥 말하지 않으면 된다.
문장보다 침묵이 더 정확한 경우도 있으니까.


꼭 누군가를 이해시키겠다는 마음보다,
일단 내 감정을 나부터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 오늘은 감도가 좀 안 좋구나.”


그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감정이 정돈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가 조용히 나를 다듬고 나면
말이 다시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소리도 온전히 들리기 시작한다.
서툴고 삐걱대던 마음도
서서히, 조금씩,
다시 맞물리기 시작한다.


사람 마음이란
늘 선명할 수 없고,
항상 명료하게 들릴 수만도 없다.
가끔은 지지직거리기도 하고,
아예 뚝 끊어지기도 한다.


그걸 ‘고장’이라 단정하지 말고,
잠깐의 신호 조정 시간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러니 오늘!

마음이 어딘가 연결되지 않는다면,
소리가 아닌 마음이 지지직거린다면,
지금은 그저 잠깐,
다시 맞추는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진짜 연결은
그런 기다림 끝에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찾아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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