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무서운 이야기
※ 경고 : 아래 글에서 등장하는 모든 내용은 픽션(Fiction, 허구)입니다.
가끔 그런 말을 쓰는 친구들을 봅니다.
“아, PTSD 올 것 같아.”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입니다. 전쟁을 겪은 군인이나, 범죄나 학대의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 후유증을 말합니다.
실제로 PTSD를 겪는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마주쳤다면 그 무게감을 알 수 있을 겁니다.
7년 군 생활을 하면서 PTSD와 싸우고 있는 친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친절했지만 말이 없었고, 늘 손과 다리를 떨었습니다. 금연 중인 것도 아니었지만요.
군대는 2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입니다. 병사들과 함께 실질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부사관들은 20대 중반~30대 초중반의 중사들입니다.
또 중대 단위로 보면 장교라고 해도 인생 경험이 별로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업무에 있어 스페셜리스트일 순 있지만 인생에 있어선 아직 배울 게 많은 나이죠.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25살의 중사였던 저는 20대 초반의 병사들을 데리고 정비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 역시 그런 사람들의 명령에 따라야 했죠.
그 친구는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왔습니다. 신병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탄약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10년 주기 검사를 하던 중 감독관님의 호출을 받고 대대본부 행정계로 갔습니다. 그 친구는 사무실 벽면의 의자에 몸을 꼿꼿이 세운 채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말을 건냈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허공을 보며 대답했고, 눈을 똑바로 보고 얘기할 수 있는 신병을 본 기억이 없어 그 친구도 으레 그런 줄 알았습니다.
대대장과 주임원사의 면담도 끝난 터라 저는 그 친구를 앞으로 근무할 중대 본부로 데려갔습니다. 그 친구는 사무실로 이동하는 1톤 트럭 안에서도 계속 손이나 다리를 떨었습니다.
제 임무는 그를 중대 본부에 내려준 것까지였습니다. 공군사관학교 출신의 서른 살의 중대장의 꼬인 성격이나, 융통성 없는 업무 스타일까지 설명해 주는 건 월권이었죠. 그래도 주먹을 휘두를 정도로 막장은 아니니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전 그렇게 다시 주기 검사를 마무리하러 갔죠.
한동안은 그 친구를 잊고 살았습니다. 같은 중대지만 정비 작업을 주로 하는 제가 그 친구를 만날 일은 별로 없거든요.
가끔 당직 사관을 설 때 보기는 하지만 병사들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깊게 관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어두운 표정을 지어도 원래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애초에 군 생활을 즐겁게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7년 복무 후 제대할 때까지 군대가 낯설었는데 입대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20대 청년이 익숙해질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나 봅니다.
군대는 폐쇄된 조직으로 입소문이 무척 빠릅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는 군인들에게 아는 사람의 ‘카더라’만큼 자극적인 것도 없죠. 보안은 있지만 비밀은 없는 게 군대니까요.
그리고 아침 작업 브리핑 시간. 반장님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 친구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 폭력과 무관심한 부모님. 그리고 낯선 환경에서 계속된 긴장. 그 친구는 사격장에서도 계속 그랬고, 결국 중대장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답니다.
그 친구는 또다시 어디론가 갔고, 저는 자연스럽게 그 친구를 잊었습니다. 그런 친구가 한두 명은 아니니까요.
그 친구를 떠올리면 여전히 군대는 체계적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친구가 다른 곳에서 우리 중대에 왔다가 다시 나가기까지 모든 건 매뉴얼대로였거든요. 사람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그 친구를 대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뉴얼대로 했기에 사고는 없었고, 약간의 행정 수고만 있었죠.
그 친구가 가고 같이 근무했던 고참 중대 병사가 제대하면서 말했습니다. 그 친구, 완전 ‘노답’이었다고 PTSD 올 것 같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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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알게 된 내용입니다만 중대장과 제대한 고참 병사를 포함해 중대에선 그 친구를 “빡 일병”이라고 불렀답니다. 박 씨가 아닌데 왜 그랬냐고 물으니 ‘빡대가리’라서 빡 일병이라고.
이런 말 하긴 참 뭐하지만 고참 병사가 중대장과 함께 얼마나 갈궜을지는 안 봐도 훤합니다.
※ 다시 경고하지만 이 글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