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기 시작하던 날 시험에 떨어졌다

전산세무 1급(24)

by 장수댁 고양이

벚꽃이 지기 시작하던 날 시험에 떨어졌다.


전산세무 1급 시험은 1년에 6번 있다. 올해 두 번째 시험을 봤고, 저녁에 가채점 답안이 나왔다. 보수적으로 계산하면 55점. 부분 점수가 있어도 15점이나 필요하다. 사실상 불합격. 누런 시험지는 가채점 후 바로 버렸다. 빗금이 왜 이리 많은지.


집사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 말이 귀에 들리진 않는다. 중간 과정인 전산세무 2급을 포함해 거의 4개월을 공부한 결과다. 괜찮을 리가. 닭강정에 맥주 2캔을 포장했고, 먹고 이내 뻗어버렸다. 이때가 오후 5시.


불합격에 익숙하지 않다. 잔머리가 좋기도 했고 그럴만한 일은 애초에 벌이지 않는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한 곳에 취업했다. 적당히 노력하면 되는 걸 하다가 적당하다 싶으면 그만뒀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눈을 뜨니 아직 저녁 8시. 집사가 산책하러 가자고 했다. 동네를 걸었다. 산책 겸 꽃구경 겸.


길가에 멈춰서 벚꽃 사진을 찍는 커플들이 그렇게 많더라. 그런 커플들을 풋풋해하며 나와 집사는 한참을 걸었다.


집사가 또 말했다. “괜찮다”고. 나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안다고 생각했다.


올해 1월 집사는 포토샵 시험을 봤다. 그때가 세 번째였다. 시험 날 어땠냐고 물었는데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더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괜찮다고 꼭 안아줬다. 집사는 며칠 후 네 번째 시험을 등록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던 중에 갑자기 놀라더라. 이유를 물으니 합격했다고. 점수는 81점이다.


축하한다고 했지만 이해할 순 없었다. 한 번에 붙은 것도 아니고 3번이나 봤으니까. 오히려 떨어지면 쪽팔리지 않을까. 집사는 덩실덩실하며 네 번째 시험을 바로 취소했다. 그런 집사는 일러스트 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번이 두 번째인.


집사는 본인을 ‘백치미’라고 표현하면서 ‘사차원’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시험도 2~3번을 봐야 겨우 합격한다. 잔머리가 별로고 요령도 피우지 않는다.


가채점 결과를 알게 된 날 집사에게 물었다. 두세 번 만에 합격하는 기분은 대체 어떤 기분이냐고.


집사는 말했다. 처음 결과를 받았을 때는 자기가 뭘 틀렸는지 알 수 있어 좋고, 다음은 얼마나 많이 개선했는지 알 수 있어 좋다고. 실제로 집사는 시험을 3번 보면서 계속 점수가 올랐다.


집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줬지만 참 가벼웠다. 혀로 1분이면 할 수 있는 말과 달리 실제로 포기하지 않는 데까지는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린다. 말을 쏟아내면서도 집사가 얼마나 매달릴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적당히 하다가 안 되면 때려치우겠지 싶었으니까.


하지만 집사는 그렇게 꾸준히, 우직하게, 늘지 않는 실력을 자책하지도 않으면서 공부를 이어 나갔다. 그리곤 3번 만에 붙었다.


벚꽃이 슬슬 떨어져 간다. 내년에도 다시 필 벚꽃이지만 떨어질 때면 늘 아쉽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걸 알고 있다. 집사는 지금도 틈틈이 일러스트를 공부하고 있다. 내가 봤을 땐 3번은 봐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모르지. 결과는 나와봐야 아니까.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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