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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주피 Feb 05. 2021

겨울의 끝

명절을 앞두고 교통체증과 방송에 대해 

Photo by Erik Mclean on Unsplash


어제(어제가 맞나요? 아니면 그제?) 내린 눈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니 이제 겨울이 슬슬 발을 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기분에는 올해 겨울은 유달리 짧은 것 같다는 마음도 들었구요. 


저희 방송사는 명절이 특수였기 때문에 항상 명절 때 생방송을 했습니다. 명절 기간 동안 24시간 생방 체제로 바꾸고 '백 몇십 시간 생방송' 이런 타이틀로 홍보하기도 했구요. 그리고 명절에는 보통 갑자기 추워졌던 기억도 많구요. 하지만 예보에 따르면 올해는 그럴 거 같지는 않은데요. 그동안의 경험으로 대충 막히는 시간을 예측이 됐었는데요, 이제는 그것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이후로 더욱 그렇구요. 


명절 때 생방송을 하다 보면 새로운 손님이 부쩍 많아지니 그들을 고정 손님으로 유인할 여러 특집이나 기존 코너에서 괜찮을 걸 내놓곤 했는데요, 하지만 생방 중에 빨갛게 된 교통지도를 보면은 교통정보를 더 내보내야 하는 생각과 어차피 어디든 막히는 데 조금이라도 지루하지 않게 다른 콘텐츠로 보상해야 하는 마음이 항상 왔다 갔다였습니다. 


청취자들 중에서도 '왜 막혀요?', '어디서부터 풀려요' 등을 물으며 교통정보는 안 내보내고 웃고 떠든다고 항의하시는 분들도 많으셨구요. 어차피 막히니 좀 신나는 분위기를 원하시는 분들도 계셨구요. 


이제 이 특수는 거의 사라졌지만 명절 때 여전히 교통정보를 묻는 문자나 왜 자기가 있는 막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얘길 안 해주냐는 항의는 많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막히는 이유를 안다 해도 그건 운전하시는 청취자분이 행동을 바꿔서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대부분 갑작스런 사고나 차량이 많이진 까닭이니까요. 오랫동안 항의 문자나 전화를 받으면서 든 생각은 막히는 상황에 대한 언짢음을 표출하고 싶은 마음, 그 기분을 달래고 순간의 짜증과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대상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화를 풀 상대가 필요하고 거기에 필요한 게 원하는 교통정보를 얘기해주지 않는 라디오가 가장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해우소 역학을 하는 게 저희일 테고요. 저희도 그것까지는 의도하지 않았고 그 청취자에게는 저희 존재가 미움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 만큼에서는 서로의 필요가 되어줬던 관계라구요. 


겨울이고 명절을 앞두고 있고 날도 흐리고 하니 마음의 상태가 조금 내려가는 것 같은데요,

오늘은 이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스위트피 - 침묵 


스위트피는 델리스파이스의 리더이자 1인 제작 시스템을 처음으로 안착시킨 문라이즈 레이블을 만든 김민규의 솔로 프로젝트 이름입니다. 이 곡은 기타와 본인의 목소리, 그리고 본인이 코러스를 넣어 어찌 보면 간단한 구성이지만 노래의 무게감은 무지 상당하다고 느꼈습니다.  


바람결에 실려 나직이 들리는 종소리

찬바람이 불어 유난히 추웠던 그 겨울

떠나보낼 수밖에 없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날들

하늘이 한순간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그 빛은 잠시 흔들린 후에야 사라져

달마저 저버린 세상에

이렇게 텅 빈 채로 나 홀로 남아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꿈에서 깨어나도 그대로인걸

슬픔에 잠긴 채 끊임없는 고통에 전율

견딜 수 없었던 참을 수 없었던 그리움

떠나보낼 수밖에 없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한참을 울다 지쳐 잠이 들었어

지독한 악몽일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꼭 기억하고 있을게요

내게 남겨진 당신의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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