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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 Jul 15. 2023

사춘기 포비아

사춘기가 끝나면 아이가 돌아올 거라 믿었다.  

폭우가 예상되는 일기예보에 걸맞게 공기는 습한 대기로 가득했다. 물은 액체일 때보다 기체일 때 부피가 크다는 아이의 과학 학습지 내용처럼 대기는 형체도 없이 무거웠다.

이를 거스르기라도 하듯 나는 한 손에 핑크빛 우산을 들고 사뿐사뿐 습도 높은 공기를 한 아름 들이켜며 약속 장소를 향해 즐겁게 걷는 중이었다. 작년 한 해 우리 아이와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함께해 준 친구들의 어머님들을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카리스마 있고 스마트하신 선생님과 순둥순둥한 친구들 덕분에 아이는 학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던 나도 즐거웠다. 사고뭉치도 거의 없고 착한 아이들만 가득한 교실이라니.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반이었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서로 편가르지 않고 함께 노는 모습은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논다는 천국처럼 신비롭고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선생님은 보내드려야 하지만 아이들이라도 계속 만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마침내 겨울방학이 시작할 무렵 망설이던 마음을 과감히 내려놓고 학교 앞 놀이터에서 열심히 노는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방학 기간 중에 만나서 노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나 같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대답하는 녀석들에게 부모님의 전화번호를 얻어냈다. 문자를 돌리고 단체톡방을 만드는 과정을 차례차례 진행했다. 그렇게 키즈카페에서 첫 번째 만남을 시작했고 어제는 아이들 없이 어머님들만의 만남이 있던 날이었다.



하나 둘, 아이들을 돌보던 모습 그대로 어머님들이 자리를 채우셨다. 전업주부로 사는 일의 힘겨움을 나누며 동지애를 느꼈다.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이의 학원비를 충당하느라 커피 한잔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우연의 일치로 우리 모임의 아이들 대부분이 전학생이었다. "ㅇㅇ학군"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고자 옆 단지 쪽에서 이주해 오신 분들이 대다수였다. 덕분에 적응이 수월치 않았던 처지까지 공유하게 되자 대화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늦게 도착한 ㅇㅇ엄마는 근황토크로 포문을 열었다. 현재의 일상에 대한 자세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아직 서로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장담하지 못했던 불안함을 온전히 잊게 했다. 인간은 결국 스스로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논리를 입증이라도 하듯 엄마들은 본인 아이의 학교 생활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스스럼없이 나누며 교감했다. '그 일이 내 아이에게 일어났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열심히 상상하며 때로는 눈물지으며 우리는 지난 만남 후 잠시 내려놓았던 서로의 소중함을 상기했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다. "ㅇㅇ오빠는 지금 사춘기일 것 같은데 괜찮아요?" 질문을 던진 엄마는 지인의 아이가 공부 잘하고 엄마를 아주 잘 따르는, 어느 누가 봐도 걱정 없는 정답지 같던 아이였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춘기에 대한 얘기를 이렇게 저렇게 듣기도 하고 책도 읽었지만 결국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엄마와 아이의 문제이기에 잠깐의 시련일 거라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몇 년만 버티면 문제는 잠잠해지고 어느새 자란 아이는 예전의 엄마 품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존재는 아닐지언정 여전히 부모님을 사랑하고 스스로도 챙길 줄 아는 대견한 청소년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내 마음대로 규정해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을 받은 중학교 2학년 큰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짐짓 아무렇지 않은 눈빛으로 내가 한마디 말을 더 보탰다. "ㅇㅇ오빠는 여전히 엄마랑 껴안고 잔다고 우리 ㅇㅇ가 그러던데. ㅇㅇ네는 아직 괜찮지 않아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ㅇㅇ엄마가 대답했다. "아니? 안 괜찮아요." 하하하하하.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마치 누군가에게 '미안해요' 사과했는데 곧바로 '아니, 안 괜찮아.' 하는 대답이라도 들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응? 이렇게까지 부인할 정도로 사춘기가 무서운 시기란 말이야?' 절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답은 더 충격적이었다. "사춘기는 병이에요. 무엇을 해도 만족스럽지 않고 짜증만 나는 병. 그리고 무서운 건 이게 쭉 간다는 거예요. 그냥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면서 한 집에서 살기만 하다가 결혼까지 간대요."


악.... 뭐라고요? 지금 이렇게 오분이 멀다 하고 엄마를 찾고 달콤한 눈웃음까지 쉴 새 없이 날려주는 우리 아이가 나랑 평행선을 달리다가 성인이 되어서 결혼을 통해 가정을 탈출한다고요? 만족을 모르는 까다롬쟁이가 되어 매일같이 엄마를 괴롭게 한다고요? 아침에 나가서 자기 신발 잘 챙겨 신고 돌아오기나 하면 다행이라고요...? 나가서 나쁜 짓만 안 하고 돌아오면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니요. 지금 이렇게 하루하루를 성실히 잘 보내고 있는 아이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렇게 변할 수가 있나요?


납득할 수 없어서 뜨악한 표정만 계속해서 짓던 내게 더 충격적인 말이 들려왔다. 여자 아이들은 '죽고 싶어'라는 말도 주저 없이 내뱉는단다. 이 정도면 생명이 오가는 상황이 된다. 아이 손끝도 터치할 수 없는 낭떠러지로 부모가 내몰린다. 영유아기의 아이에게 찰떡처럼 맞아 들어갔던 꼼꼼하고 성실한 부모의 장점들은 청소년기에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몸에 좋은 것만 먹이고 나쁜 일에는 얽히지 않도록 보호해 가며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부모의 마음'은 '나 몰라라' 하고 친구의 말을 90퍼센트, 학교나 학원 선생님 말을 10퍼센트 정도 듣는다고 했다. 편식하는 아이의 건강을 배려해서 '반찬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말 한마디 건넨 일조차 잔소리가 되어 아이의 화를 돋울 수 있다는 얘기에 숨이 막혔다.



다행히 '사춘기 전에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는 말 한마디가 얼음이 되어버린 마음에 한가닥 희망을 주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라고,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결국은 부모와 자녀 간에 올바르게 형성된 '관계'가 답이라고 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아이 편이 되어줄 줄 아는 부모 곁에서 아이는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를 쌓는다고 했다.


문득 머릿속에 영화 '인사이드아웃'이 떠오른다. 주인공 라일리는 이사와 사춘기를 함께 겪는 소녀로 등장한다. 이사라는 인생의 큰 사건을 통해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로 한 단계 발돋움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잘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힘든 라일리의 기분을 슬픔 이가 가출한 것으로 응용한 스토리는 컬러풀한 색감과 더불어 아이의 머릿속에서 여러 감정들의 온갖 에피소드들은 물론이고 사랑해 마지않던 애착인형, 빙봉이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유년기와의 작별이 아이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주었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 라일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감정의 섬이 하나씩 무너져버린다. 결국 가족의 섬마저 붕괴되는 모습이 나오고 모든 게 끝나버린 듯 일순간 조용해진다. 그 탈선의 순간에 어린 시절 깊이 각인된 부모님의 사랑은 라일리의 마음을 바꾸고 집으로 돌아올 용기를 준다.




지나치게 솔직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머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순간이 되면 알게 모르게 마음이 지쳤음을 고백한다. 알게 모르게 전달된 (내 입장에서는) '나만' 모르던 소식들이 내 마음을 짓누르며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날의 만남은 문득 튀어나온 '사춘기'라는 소재 덕분에 우리 모두 사실은 겉치레는 관심 없고 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에만 깊이 몰두해 있는 엄마들이라는 동지애를 확인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의 불편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뱃속 깊이 편안하고 고맙기만 했다. 세상 그 어떤 세미나가 이렇게 따뜻하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남길 수 있나 싶었다.


내 아이와 많은 추억을 쌓아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은 각자의 숙제로 남았다. 돌아오는 길, 최근 아이의 선행학습을 봐주며 부렸던 나의 만용과 못된 행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거의 항상 선행학습과 아이와의 추억 쌓기에서 선행학습이 이겼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욕심이 없고 아이가 잘해서 할 수 없이 했던 일들이라고 변명을 해댔지만 행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사춘기 전에 선행을 많이 해놓아야 사춘기일 때 아이를 놀게 하고도 대학 보낼 때 괜찮은 성적표를 받아 들 수 있다는 말이, '서로에 대한 신뢰 쌓기'보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학벌에 집착해야 한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만 같았다. 그 학벌이 아이의 행복을 온전히 규정짓는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나의 미래와 아이의 미래를 다시 떠올려본다.  

지금의 내가 오롯이 현재를 살 수 있는 에너지의 근원은 우리 아이에 대한 사랑이다.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 넘치는 이 사랑은 젊은 날 쏟아붓던 이성에 대한 강한 이끌림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 늦기 전에 이 사랑을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아이가 내게 보여주는 모든 예쁜 행동들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용서 앞에 나는 뭘 해왔나 생각에 잠긴다. 삼시세끼 챙기고 곁을 지켜야 하는, 과거의 내가 선택한 지금의 결과 앞에서 아이 탓을 했던 건 아닌가 싶다.  


어리석은 선택은 후회를 부른다. 이제 한 가지가 확실해졌다. 아이와 나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이를테면 책 좋아하는 나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여유 있게 감상을 나누는 추억을 쌓아야 한다는 것. 어쨌든 구체적인 방법도 떠올랐으니 반은 된 것 아닐까? 쉽지 않지만 더 많이 노력하고 애쓰는 부모로서 현재를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살다 보면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처럼 힘든 순간마다 늘 함께 했던 부모님을 떠올리게한 단단한 사랑의 씨앗이 우리 아이의 마음속에도 서서히 자리잡을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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