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을 받던 날, 세상이 멈췄다

보통의 하루를 꿈꾸며 - 자폐아이와 함께하는 이야기 2

내 아이의 발달이 늦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혹시나’ 하며 외면했던 시간, ‘설마’로 덮어두었던 날들이 쌓였다. 그리고 결국,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아이의 장애 판정을 받기까지 마음을 다잡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긴 속앓이는 오늘은 잠시 접어두려 한다. 오늘은 그날의 한 장면만 남기려 한다.


아이의 발달평가와 언어평가를 위해 대학병원을 찾았다.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검사였지만, 나는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네, 그건 안 돼요.”

“아직 안 돼요.”

그 말을 할 때마다, 내 안 어딘가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언어평가는 아이와 분리해서 진행됐다. 문 앞에서 대기하던 나에게, 잠시 후 아이의 울음이 들려왔다. 명백히 “싫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그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오직 울음뿐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불려 들어갔다. 평가는 부모 면담 위주로 전환됐다. 나는 힘든 마음을 감추며 대답을 이어갔지만, 그 순간 아이가 내 품에 와서 안겼다. 평소 잘 안기지도 않던 아이가. 그날따라 아이는 내 목에 매달리듯 칭얼거렸고, 나는 그 작디작은 몸의 떨림을 느꼈다.

평가는 결국 서면으로 대체되었다. 한 아름 안겨진 종이뭉치를 들고,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주차장을 걸었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달라졌을까.”

수없이 반복되는 질문들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발달이 늦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만나는 모든 상담사와 의사들이 묻는 질문들이 있다. 그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나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첫 아이가 찾아왔던 그때를 떠올린다. 계획한 임신이었지만, 너무 빨리 찾아와 조금은 당황했었다. 출산 열흘 전까지도 일을 했고, 몸과 마음이 지쳐 매일 눈물이 나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심한 산전우울을 앓고 있었다.

진통 8시간 끝에 아이를 낳은 날,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예쁘다는 감정보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먼저였다. 병원 사람들은 왜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느냐, 왜 아이를 보러 가지 않느냐며 나를 다그쳤지만 그날의 나는 그저 자고 싶었다. 누구도 내 몸의 고통을 묻지 않았고, 모두가 아이만 바라봤다.

그때의 나는 단순히 피곤했던 게 아니다. 누구도 내 마음의 균열을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온다. 출산 과정에서의 내 선택, 나의 감정, 심지어 내 피로마저 ‘아이에게 잘못된 영향을 준 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마음 때문에 둘째를 갖기로 결심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지금은 안다. 늦었지만 검사를 받았다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이제는 장애등록 절차를 밟아야 할지도 모른다. 일반학교 진학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절망하지 않는다.

발달이 느린 아이의 부모는 매 순간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흔들린다. 절망 속에는 늘 죄책감이 함께 따라온다. 오늘 나는 죄책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희망은 단 한 줄기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숨을 고른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니까.


이 글이 공감이나 위로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오늘도 나는 죄책감에 잠식됐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루를 버텼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게 잘못된 게 아니라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살며시 말해주고 싶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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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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