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라는 단어가 낯설었던 시절

보통의 하루를 꿈꾸며 - 자폐아이와 함께하는 이야기 3

100일도 채 안 된 아이가 나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내 얼굴 대신 벽시계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아이는 원래 말이 늦어요.”
“첫째는 다 그래요.”
그 흔한 말들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모르는 척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아마 5년은 그렇게 흘러갔던 것 같다.


가끔은 그 외면했던 시간들이
지금의 아이를 더 어렵게 만든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말이 늦고, 눈 맞춤이 어렵고, 여전히 소통이 막힌 건
그때 내가 너무 오래 외면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물론 이제는 그 죄책감마저도 내려놓으려 애쓴다.
그 시절의 나는, 단지 ‘모르는 엄마’였을 뿐이니까.


우리나라에는 영유아검진이라는 제도가 있다.
취학 전까지 거의 매년 받는 검사다.
우리 아이는 매년 결과지에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 의심’.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대체 자폐 스펙트럼이 뭐지?
자폐면 자폐고, 지적장애면 지적장애인 거 아닌가.
왜 이렇게 애매하고, 어렵고, 무겁게만 느껴질까.


나름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DSM-Ⅳ 기준을 배웠고
정신건강 영역의 용어들도 익숙했지만,
막상 ‘내 아이의 문제’로 마주하니
그 모든 지식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의사들도 명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조금 더 지켜보죠.”
그 말만 남기고, 아무도 이 단어의 무게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불행의 늪으로 걸어 들어갔다.

인터넷 검색, 맘카페, 지인들의 말,

“그렇다더라”, “이 병원 가봐라”, “그 교수님이 유명하다.”

끝이 없는 정보의 파도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깊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는 일곱 살이 되었다.
장애등록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정작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누구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소아과에서는 매번 ‘의심된다’고 했지만,

정확히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어디에 가야 하는지,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결국 또 ‘인터넷의 말’에 기대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들려온 지인의 추천 —

“서울 어디 재활의학과가 좋다더라.”


나는 둘째를 품은 몸으로 초진 예약을 잡았다.
의뢰서를 받기 위해 동네 병원을 돌고,
둘째 출산을 앞두고도 병원 일정표를 챙겼다.
출산 후, 몸도 못 추스른 채 아이의 평가를 받으러 갔다.



그날, 나는 또 수없이 반복했다.

“네, 그건 아직 안 돼요.”

“이건 못해요.”

“그건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대답을 할수록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를 낳은 몸으로 젖몸살을 앓으며,

마스크조차 쓰기 힘들어하는 큰아이의 손을 잡고

코로나19로 뒤숭숭한 병원 복도를 걸었다.


그때 내게 주어진 서류는

‘언어장애 등록용 서류’.

재활의학과에서는

“이 아이는 더 이상 판단이 어렵습니다.

소아정신건강의학과로 가세요.”

그 한마디였다.



다시 의뢰서를 들고, 다시 초진을 예약했다.

또다시 모든 질문에 “안 됩니다”로 대답해야 하는

그 절망적인 검사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받은 단어 — ‘자폐’.


그 단어 하나가 내 세상을 멈춰 세웠다.
그제야 알았다.
이제부터는 치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그게 얼마나 고되고, 또 얼마나 외로운 여정인지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자폐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는다.

그 단어를 내 아이의 이름 옆에 두는 일은

아직도 쉽지 않지만,

그건 아이의 한 부분일 뿐, 전부는 아니니까.


이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낙인을 넘어서는 법,

절망 속에서도 다시 숨을 고르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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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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