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출산. 육아. 20대의 나에겐 멀고도 가까운 단어, 가까워지려고 하면 멀리 밀어내고 싶었던 단어였다.
어릴 적부터 아기를 접할 일이 없기도 했고, 아쉽게도 여러 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아이들과의 추억은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위 3가지를 감수할 만큼 사랑스럽지 못했다. 길을 걸어 다니며 마주치는 아이들도 그저 어른이 되지 않은 '작은 인간'으로 느껴질 뿐 특별한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가끔 이런 날 보며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다. 회사에 다니며 우울했을 때에는 이런 우울한 세상에 또 다른 생명체를 낳는 게 아이에게 미안하고 이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어느덧 아이를 낳아도 전혀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아이를 기르기에 더 우울한 세상이 됐고 결정의 시간을 또다시 미뤘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코로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의학적으로 노산으로 분류될 나이가 얼마 남지 않게 됐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준비하며 힘겨워하는 부부들을 많이 보아왔기에, 이제는 정말 아기를 낳을지 말지 확실히 결정해야 했다. 남편과의 오랜 대화를 통해 남편은 아이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단 걸 느낄 수 있었고, 나도 아기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됐단 걸 알게 됐다.
다행히 우리 부부에게는 예쁜 태몽과 함께 빨리 아기가 찾아와 주었다. 초음파 진료를 보는 모든 순간이 신비롭고 감동적이었다. 화면 안에 들어있는 흑백의 존재.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입덧 등 임신 증상으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아이를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기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오히려 아기가 내 뱃속에서 불편하진 않을까, 부족한 게 있진 않을까, 내가 잘못 먹은 어떤 음식 때문에 힘들진 않을까 걱정됐다. 주차에 맞춰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기에게 너무 고마웠고, 기특했다. 인터넷에서 떠돌거나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해 주는 무시무시한 임신 경험담들은 나에게 해당하지 않았다. 아프다고 해서 걱정했었던 태동은 늘 반갑고 마냥 사랑스럽다. 모든 사람에게 힘든 임신 증상이 전부 나타나는 건 아니었다.
한 번은 친구랑 길을 걷다가 인도 위로 불쑥 올라온 킥보드와 부딪힐 뻔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크게 놀라기만 했을 뿐 배에는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친구는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유유히 사라지는 킥보드의 뒷모습을 보며 화를 냈지만 나는 화보다 안도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대로 킥보드와 부딪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주 살짝이라도 부딪혔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킥보드랑 부딪힐 뻔했던 순간이 다시 떠오르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 때문에 아기가 다칠 뻔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칠 정도로 큰 죄책감을 느꼈다. 그 이후로 며칠 동안 밖에 나가기가 무서웠다. 하지만 이대로 집에만 꽁꽁 숨어있는 것도 아기에게 나쁠 거라 생각하며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대신 예전보다 주위를 더 열심히 살피고 있다.
초음파 사진 말고는 얼굴도 모르는 존재가 이렇게 소중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비롭다. 늘 다정했던 남편은 더 다정해졌고, 우리 부부 사이는 더 돈독해졌다. 사람들이 왜 아기를 낳으라고 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조금씩 된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지금보다 더 소중해질까?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아직 임신 과정 밖에 안 겪어봤지만 출산, 육아의 과정도 이렇게 기쁨과 두려움의 연속일 것 같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아플 때도, 건강할 때도 나는 우리 아기를 변함없이 사랑할 자신이 있다.
사랑해 우리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