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를 E로 바꿔드려요

내향인으로 산다는 것

by Ara

최근 대치동 엄마들을 풍자한 밈이 이슈다. 나는 이 영상 중에서 아이를 I(내향형)에서 E(외향형)로 바꿔준다는 과외가 언급된 부분에 꽂혔다.


내향형은 '소극적이다', '위축돼 있다', '부자연스럽다' 등 부정적인 키워드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외향인 만큼 내향인도 많이 분포하고 있는 세상이므로 내향인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밈에서도 이렇게 묘사된 걸 보면 자신의 아이가 I보다 E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사회의 틀 속에서 살아나가려면 내향형보다 외향형이 유리한 건 맞다. 나도 퇴사하기 전까지는 나의 내향적인 성격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많이 느끼면서 외향적인 친구들을 닮아가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더 이상 사회의 틀에 크게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프리랜서의 삶을 사는 지금은 내향적인 내가 좋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기적으로 필요한 내가 좋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버겁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이럴 땐 한동안 약속을 잡지 않고 집중해서 무언가를 배우며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킨다. 혼자 지내며 몰랐던 나의 모습, 나이 들면서 변화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내향형 60% 외향형 40%여서 그런지, 이렇게 한 두 달 정도를 보내고 나면 어느새 사람이 그리워진다. 그러면 겨울잠 자고 일어난 곰처럼 동굴 밖으로 나와 동굴 속에서 나 혼자 했던 일을 사람들 앞에서 신나게 풀어놓는다. 감사하게도 내 주변에는 이런 유별난 나를 기다려주고 내가 한가득 모아 온 소소한 이야기보따리에 귀 기울여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다대일 만남보다 일대일 만남에 강한 내가 좋다. 사람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데, 긴 시간 일대일로 만났을 때 우러나오는 이야기에는 생각해 볼 재미있는 포인트와 인사이트가 많기 때문이다. 가끔은 여러 명이 만나서 너무 진지하지 않은 대화를 가볍게 나누는 것도 좋지만, 나는 가벼운 이야기보다 한 사람의 깊은 생각을 듣는 게 더 흥미롭다. 어떤 구성으로 모였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을 만나도 대화의 소재와 깊이가 달라진다. 제대로 된 대화는 듣는 이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져야 하니까.


내향인으로 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글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글을 좋아하는 외향인들도 있을 테지만, 내가 아마 외향적인 성향이었다면 글에 대한 사랑이 지금만큼 깊지 못했을 것 같다. 어릴 적 학교가 끝나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될 때까지 도서관에 가있곤 했다. 나는 모험 이야기를 좋아했다. 도서관 책꽂이에는 매력적인 장소로 이동해 매력적인 인물들과 모험을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이 가득했다. 나는 책을 펼쳐 내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일들을 상상했다. 왠지 책이 많은 공간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우리의 고민들은 대부분 답이 없지만, 작가가 오랜 고민 끝에 정갈하게 기록해 둔 글은 삶의 순간순간을 헤쳐나가는데 큰 힘이 된다. 매일 책을 읽진 않아도 "요즘 책 뭐 읽어?"란 질문에 늘 답할 수 있을 만큼 내 침대맡엔 언제나 책이 한 권씩 놓여있고, 먼 곳으로 외출할 땐 책을 애착 인형처럼 꼭 한 권씩 들고나가곤 한다. 글을 읽는 것만큼 쓰는 시간도 즐겁다. 나에게 글쓰기란 혼자 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행위이다. 언제 어디서나 종이와 펜, 노트북과 손만 있으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외향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000한 점이 외향인보다 더 좋다'라고 말할 순 없지만, 내향인으로 사는 삶도 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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