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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Sep 14. 2024

성실한 반복

 2023년 6월, 디자인 작업실 겸 서점을 열었다. 대학교 근처에 자리한 15평 남짓의 작은 공간. 지어진 지 19년 된 건물은 곳곳이 낡아 손볼 곳이 많았다. 안전을 위한 전기 설비와 바닥 시공부터 작동이 불가능해진 환풍기 철거 등 가구와 제품이 들어오기 전 해야 할 일들이 제법 많았다. 한 번은 유리문 문 끼임 방지 고무가 다 삭아 새것으로 교체해야 했는데, 드라이버와 전동 드릴로 아무리 해도 문고리가 풀리지 않아 전동 그라인더로 잘라내는 일도 있었다. 바닥 타일 시공을 위해 기존 타일을 철거할 때는 오래된 타일이 바닥에 눌어붙어 철거 기사님들이 철거 도중 포기하기도 했다. 타일 시공 중 타일이 모자라 주변에 수소문해 타일을 구했던 일까지. 하나에 한 가지 이상 이슈가 생기곤 했지만, 결국엔 해결되었다.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서점’이기 때문에 준비하는 과정 중 부담도 컸다. 가구부터 작은 진열 집기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의 관점에서 세세하게 신경 쓰다 보니 공간을 준비하는 몇 달간 늘 새벽 네 시 반이면 눈이 떠졌다. 걱정과 고민을 달고 사는 나라서 고민하는 것이 있으면 어김없이 꿈에서도 이어졌다.

 공간을 준비하면서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는지 나에게 수없이 질문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함께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치수와 폭을 직접 계산하고 스케치해 의뢰한 책장도, 예약제로 운영하는 한 사람을 위한 비워둔 테이블도, 매달 협업을 통해 진행하는 전시도, 책과 제품의 선별 기준과 제작물의 제작 이유도, 아끼는 책을 나누고 싶어 두게 된 공유 서재와 공간을 채우는 음악, 식물, 향기까지도. 모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영감을 주는 공간에서 천천히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공간의 오픈과 마감을 알리는 검은색 철제 입간판은 스무 해 넘게 간판을 만들고 계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다. 양손으로 쥐고 옮겨야 하는 묵직한 입간판을 펴고 접을 때마다 고향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게 된다.

 출근 전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카페를 찾아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문득 내가 보내는 하루는 매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으로 채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택배를 배달해 주시는 택배 기사님들, 오전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근처 동물병원 간호사님, 재료 준비를 위해 오픈 전 일찍 출근하는 옆 가게 파스타집 직원분들, 맞은편 구릉에 매일 찾아오는 새들까지 하나같이 매번 부지런하다.

 오늘도 약속한 시간에 공간을 열고 물과 티를 준비하고 테이블을 닦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성실함에 기대며 보냈던 나의 하루처럼 공간을 찾게 될 누군가의 소중한 하루를 위해 성실한 반복을 이어간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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