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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Sep 20. 2024

식물의 속도처럼

 지난여름 공간을 열면서 플랜테리어 디자이너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실내 환경에 적합한 식물들로 공간을 채웠다. 실내 환경에 맞춰 반양지, 반음지에서 잘 자라는 고사리과 식물들을 들였지만,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을 지나오면서 일부 식물들은 기운을 잃고 시들었다. 여름휴가 때 공간을 오래 비우면서 물을 넉넉히 주고 갔다가 과습으로 물러져 죽기도 하고 겨울을 보내면서 난방기의 따듯한 바람을 직접적으로 맞는 바람에 잎이 마르기도 했다.

 겨울에 더 영양을 보충해 줘야 한다고 해 물을 줄 때마다 식물 영양제를 희석해 함께 주었지만, 집사의 역량이 부족해 처음의 생기를 많이 잃어 한동안 많이 속상했다. 아침에 출근해 냉난방기를 켜면 한여름에는 29도에서,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9~14도에서 온도가 시작되니 일정한 온습도를 유지해 주지 못해 식물도 몸살을 앓았는지도 모른다.

 물을 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는데 며칠 전 물을 주려고 보니 새순이 돋아 있었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그대로였는데 작업 테이블에 놓아둔 다바나 고사리에서도 책장 위에 나란히 올려둔 프테리스 알보와 블루스타에서도 새잎이 고개를 내밀었다.

 인공조명과 온도에서 자라는 실내 식물도 계절의 변화를 알아챈다는 게 퍽 신기하다. 구엽들과 확연히 다른 연둣빛으로 돋아난 잎을 바라보면서 사람도 식물처럼 제때 피고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체득한 자연의 섭리를 따라가기에는 한참 부족해서 자꾸만 서두르고 스스로를 공연히 채근하게 된다. 

 그날의 힘든 일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면 생각조차 나지 않는 일에 골몰하는 건 내게 자주 있는 일이다. 피어야 할 때, 쉬어야 할 때, 조용히 에너지를 비축해야 할 때를 알면 마음의 고요를 찾을 수 있을까.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데 마음이 분주해졌다가 새잎을 틔운 식물을 바라보며 조바심을 잠시 내려놓았다.

(202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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