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눈 와요.” 계산을 마치고 막 돌아선 손님이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발견하고 내게 알려 주셨다. 비에 가까운 눈이었지만 겨울이 오면서 내내 기다렸던 첫눈이었다. 혼자 첫눈을 맞았으면 왠지 많이 아쉬웠을 텐데 공간을 찾은 손님과 함께 볼 수 있어 좋았다. 비와 섞여 바닥에 쌓이지 못한 채 금세 녹아 버리는 첫눈을 바라보면서 통창 너머 언덕에 눈이 쌓인 모습을 가만히 상상했다. 첫눈이 내린 후에도 몇 번 눈이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휴무와 겹치거나 타지에 있어 눈 내리는 서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올 1월, 통창에 붙인 레터링 스티커가 눈에 띄도록 마스킹 테이프를 배경처럼 붙여 놓았었는데 돌출간판을 달면서 마스킹 테이프를 떼고 싶어졌다. 금방 할 줄 알았는데 반년 동안 한자리에 붙어 있었더니 테이프 접착제가 유리창에 눌어붙어 잘 떼어지지 않았다. 하루는 통창, 하루는 유리문을 목표로 마스킹 테이프에 세제를 바른 후 칼등으로 긁어 가며 제거한 지 이틀째. 한참 유리문과 씨름하고 있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내리는 서점의 모습을 담고 싶어 서둘러 마무리하고 필름카메라와 핸드폰을 챙겨 문밖에 나가 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이런 날 다른 사람과 함께 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까운 분들이 약속이나 한 듯 차례로 방문해 주셨다. 해가 바뀌었으니 지금 내리는 눈이 올해 첫눈인 거라고 수진 님이 얘기해 주셔서 내리는 눈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공간을 열 때만 해도 한창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이제는 창밖에 보이는 풍경들도 많이 달라졌다. 초록 잎이 무성했던 나무는 가을이 되면서 감나무라는 걸 알려 주었다. 단단했던 감이 어느새 물컹해지자, 참새와 까치, 이름 모를 새들이 부지런히 감나무에 날아들었다.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다 고개를 들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풍경이 나타났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면 잡풀이 많이 자란 언덕에 더 많은 새가 찾아왔다. 종종걸음으로 잡풀 사이를 헤집어 먹이를 찾는 새들의 분주한 모습을 보면서 ‘비 오는 날 새가 많네’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날씨가 습해지면 지렁이와 벌레가 많아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때보다 겨울비가 잦았던 올겨울, 그래서 더 자주 새들을 만났다.
공간을 열고 나서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계절이 하나 있다. 공간이 자리한 학사마을은 하천을 따라 긴 산책로가 있는데 봄이 되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룬다. 얇은 외투만 걸쳐도 될 만큼 날씨가 따듯해지면 겨울 동안 조용했던 나무에서 새순이 나고 하나둘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도 운전 대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출근해야겠다. 지난가을에 필름워크숍을 했던 것처럼 다 함께 카메라를 손에 쥐고 벚꽃길을 걸으며 사진 찍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202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