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 읍내에서 월리 방면으로 있는 남대천 다리를 건너면 다리 끝 양옆에 식당들이 있다. 일렬로 나란히 선 식당 세 곳 중 가운데에 엄마의 식당이 있었다. 중학생이던 때부터 갑자기 단체 손님 예약이 있거나 일손이 부족할 때면 대신 서빙을 하고 상을 치우며 엄마를 도왔다. 오랜 시간 식당을 운영한 엄마 곁에서 마주했던 장면 중에는 공깃밥이 있다. 갑자기 단체 손님이 있거나 평소보다 밥을 적게 지어 공깃밥이 부족할 때면 가게 뒷문으로 공깃밥이 오갔다. 때론 엄마가 때론 옆집에서 공깃밥을 빌렸는데 맛도 담음새도 조금씩 다르지만, 따듯한 밥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던 공깃밥을 손님에게 내어주며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한참 흘러 서점을 열게 된 지금, 내게도 종종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옆에 붙어 있진 않지만, 마음만은 옆집 같은 친구 서점과 거래처를 통해 받은 책 사은품을 나누기도 하고, 내가 이용하는 배본사에는 입고되지 않는 책을 대신 부탁해 주문할 때도 있다.
작은 규모의 서점은 서점원의 큐레이션이 공간의 분위기를 만든다. 가능하면 겹치지 않게, 공간을 찾는 손님과 서점원의 취향을 담아 책을 선별하지만, 서점을 열기 전 그곳의 단골이었던 데는 이유가 있듯이 책 취향이 겹치는 때가 자주 있다. 내가 부탁한 책은 한 뮤지션의 음악을 여섯 명의 시인과 소설가가 듣고 쓴 산문을 모은 에세이집이었다.
책이 입고되었단 연락에 마감 후 갈 생각에 종일 설레었는데 출발하려고 보니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방전되는 경우가 나만은 아니었는지 출동 기사님은 아무리 빨리 가도 한 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다고 하셨다. 아쉬움과 체념을 보태 오늘 못 갈 것 같단 연락을 하고 뒤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예상보다 일찍 기사님이 와 주셨다. 다른 동네에 가기 전 먼저 들러주신 덕분이었다. 짧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출발할 수 있게 되어 오랜만에 안부도 나누고 낮에 먼저 이곳에 왔던 친구가 나를 위해 미리 주문해 두고 간 수프도 먹을 수 있었다.
겨울은 그런 계절인가 보다. 따듯한 기억을 그러모으고 싶은 계절,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계절. 저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기온에 마음마저 차가워지지 않도록 서로의 손에 공깃밥을 쥐여주게 된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