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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Sep 16. 2024

영원의 빛

 공간이 생기면서 안정감이 생겼다. 그동안은 작업에 따라 카페와 집을 오가며 일했는데 이제는 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작업을 이어가게 되었다. 전면이 유리로 된 통창에 놓인 빈티지 테이블. 테이블에 앉아 작업을 하다 보면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자주 시선이 머문다. 큰 도로와 작은 골목 사이에 있는 낮은 구릉 덕분에 대로변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연 속에 있는 기분이 들어 창 가까이에 테이블을 두고 블라인드도 달지 않았다.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다 창 너머로 시선을 옮기면 까치가 총총거리며 먹이를 찾는 모습을 자주 만난다. 어떤 날에는 잘 보기 힘들다는 화려한 깃을 가진 후투티를 보기도 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펼쳐지는 단조로운 풍경 속 작은 변주들은 매일 공간을 지켜야 하는 일상에 작은 즐거움을 주었다.

 공간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우연히 등 뒤로 책장 너머 벽에 비친 빛 그림자를 발견했다. 공간을 계약하고 준비하면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빛 그림자는 해가 비추는 각도에 따라 책장 위 선반에 놓인 화분을 비춰 식물 그림자를 만들기도 하고 빛이 서서히 내려오면서 책 그림자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 3개월 동안 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빛 그림자가 나타날 때면 서둘러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사라질 것을 알기에 더 소중한 우연의 빛’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오늘 내가 보낸 하루 중에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순간을 만나고 잃게 될까.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사라지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조금이나마 알아챌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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