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오리 Mar 22. 2024

베이글은 왜 갑자기 내 삶에 찾아왔을까

힘들 때는 베이글을 먹어요


베이글을 원래 좋아했던 건 아니다.


첫인상은 별로.

맛있지도 않으면서 비싸서 싫었다.


도넛과 똑같은 동그란 었다.

그런 주제에, 비쌌다.


그렇다. 난 생긴 것에 비해 비싼 빵은 무조건 싫어하고 봤다.

재료도 안들어갔으면서 비싸게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난 평생 식빵이나 베이글, 혹은 크루아상 같은 밋밋한 빵들을 괄시했다.


개성없는 그들을 피해 소시지와 케챱, 혹은 초콜릿이나 크림 같은 내용물과 정성으로 꽉꽉 채워진 빵을 찾아다녔다.


소복하게 쌓인 토핑들을 한입 가득 베어물면, 그날의 마음이 푸짐해다.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빵이 힐링 푸드가 된 건.

빵은 영원한 간식이자 영혼의 안식이었다.




그러다 언제였던가. 인생이 힘들어질 때였나.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더니, 고비를 넘기고 나니 입맛이 게 말라갔다.


나는 점차 말라갔다.

그 좋아하던 컵라면도 끊고

식음(빵과 음료만)을 전폐한 채, 삼시세끼 식사만 했다.



엄청난 시련이었다.


간식으로 먹던 크림빵마저도 손에서 놓고,

바닐라라떼 대신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심지어는 시럽 추가 없이 마시는 나를 보며,

한동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맙소사. 내가 설탕을 끊어?


원인을 찾아봤자 원인을 제거할 순 없었기에,

난 묵묵히 회사를 다녔다.


그렇게 퇴근 후, 슬픔에 잠기는 나날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과거 어느 옛날,

베이글이 베이글인지도 모른 채 취식하

그 무지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고


홀린 듯 마트에서 베이글을 한 봉지 집어들었다.


볼품없는 베이글이었다.


식품 공장에서 우후죽순으로 찍어내는 그런

빳빳하고 질긴, 싸구려 베이글.


개당 천원이면 살 수 있고,

심지어 유통기한이 가까워지면 몇프로 더 할인 붙여서 파는,

그런 인스턴트 베이글.


맛이 없을 게 뻔했다.

가뜩이나 아무 맛 안나는 빵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손에 쥐어졌을까.


나는 한동안 차곡히 쌓인 4개의 튜브를 보며 생각했다.


이걸 집에 가서 먹으면 밥에 물을 말아먹는 것과 다를 바 없겠다.

자린고비의 정신을 체현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웬일인지 나는 손에서 베이글을 놓지 않았다.

도리어 크림치즈를 하나 집어들었을 뿐이다.


크림치즈.

어쩌면 나는 그게 먹고 싶어서 베이글을 집었는지도 모른다.


크림치즈를 맛있게 먹는 어느 예능 때문이었나.

아니면 필라델피아라는 샌드위치 가게를 봤기 때문일까.


무엇이 트리거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충동이 일으킨 얄팍한 상술이었다.


흐려진 원인을 지금 찾는다한들,

출력되고있는 영수증이 다시 빨려들어가진 않을거였다.


과거를 배회하는 동안,

나는 이미 결제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옛기억이 시작이었는지,

어느 드라마가 시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충동에 항복했다.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평소 하지 않던 일탈을 감행한 것이다.


역시나. 내 취향은 아니었다.


밍숭맹숭한 빵에

밍숭맹숭한 크림치즈라니.


평이한 맛과 모습에, 유일한 자극성이라곤

질긴 식감 뿐이었다.


나는 손에 베이글을 든 채로 질겅질겅 씹어댔다.


턱관절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베이글은 섬세한 감각으로 먹어야하는 빵이었다.


마냥 대충 씹어 넘길 수도,

마냥 열심히 씹어 삼킬 수도 없었다.


턱이 아프지 않을 만큼,

대신 부드럽게 삼킬 수 있을 때까지만 씹어야하는,

그런 빵이었다.


껌보다 인위적이지 않고

육포보다는 부드러운,


적당히 곱씹다가

적당히 넘겨버려도 되는,


그런 하루의 기억처럼

베이글과 시간을 회고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극단을 이었더니 동그란 원형이 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맛이,

어느 순간 다시 내가 된 것이다.


베이글은 가 되었다.


베이글은 나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해주었다.


목과 가슴을 콱콱 막히게 만들고,

종국에는 고릴라처럼 가슴을 쿵쾅쿵쾅치며 울부짖게 만들었다.


그러다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한잔 들이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베이글을 먹고 쿵쾅거리는 나를 보며

그저 베이글을 많이 쳐먹는 사람인 줄로만 알겠지만,


베이글은 먹는다는 건, 나를 스친 숱한 하루를 곱씹는 행위였다.

베이글은 나의 고통을 숨겨주는, 그런 영혼의 단짝이 되었다.


그렇게, 베이글과 나만 아는 비밀이 생기기 시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베이글 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금요일 연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