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가 집에 이사 온 첫날, 좀 끔찍한 꿈을 꾸긴 했지만 그건 꿈이었다. 생생하게 느껴졌어도 꿈일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꿈이 아닌 실제 ‘이상 현상’을 겪으면 그건 말이 좀 달라진다. 무덤가 외딴집에 살 때, 아직 어린 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안방을 썼지만, 나는 현관문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 방을 혼자 썼다. 방 크기는 고시원보다 살짝 넓은 크기로 그다지 큰 방은 아니었어도, 책상 하나, 2단짜리 옷장 하나, 행거 하나 들어갈 크기는 충분했다. 그리고 밤에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잤다. 어릴 때부터 어둠을 무서워했던 나는, 불을 끄기 전 항상 작은 스탠드를 발 밑에 켜고 누웠고, 양 옆에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인형을 두고 잤다. 문구점에서 만 원 정도에 구매한 흰둥이와 산책하는 짱구 솜인형을 안고 자면, 그나마 무서움이 덜했다. 보통 나는 9시에서 10시쯤 방으로 자러 들어갔고, 엄마와 아빠도 같은 시간에 안방으로 들어갈 때도 있었지만, 나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간까지 거실에서 TV를 보다 들어갈 때도 있었다.
안 그래도 인적 드문 시골, 그 안에서도 산속에 있는 군부대, 거기서도 더 안으로 들어가 있는 외딴 관사 집이었으니 밤에는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었다. 고요함을 넘어 적막했고,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과 빗방울 굵기까지 짐작이 가능할 정도로 자연의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집이었다. 집 주변이 조용한 만큼 집 안에서의 방음은 약한 집이었기에, 거실에서 다 같이 TV를 보다가 내가 먼저 작은 방으로 자러 들어가면, 엄마랑 아빠도 나를 위해 TV 소리를 작게 줄였다. 그렇지만 음소거가 아닌 이상 TV가 켜져 있다는 건 알 정도의 전자음을 들을 수 있었고, 엄마랑 아빠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두 사람이 거실에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날도 다음 날 학교 갈 생각에 먼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인형들을 안고 누웠지만 그날따라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본래 누우면 잠들기 전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긴 하지만, 너무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이리 뒤척 저리 뒤 척하며 애꿎은 이불만 돌돌 말고 있었다. 늦게 자면 잘수록 아침에 일어나기 너무 힘들다는 걸 알았기에, 눈을 감고 잠들려 애쓰고 있는데 거실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엄마랑 아빠가 아직 TV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그프로라도 보는지 TV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깔깔대며 웃는 소리도 함께 섞여 들렸다. 두 분도 조금 있으면 들어가시겠지 싶어, 들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려 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떠들고 있는 것 같았다.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아직까지 TV를 보는 거지?’
‘내가 자러 들어왔는데 왜 TV볼륨은 줄이질 않는 거야?’
안 그래도 잠이 안 와 미치겠는데 시끄럽기까지 하니, 나도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참으려 했지만 도저히 이 소음을 참으면서 잠들 수 없었기에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엶과 동시에 거실 방향으로 소리쳤다.
“ 시끄러워, TV 소리 좀 줄….”
나는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문을 열고 내다본 거실은 TV는커녕 이미 불도 다 꺼져 있고, 아무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나는 무슨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고 잠 못 이루고 있었던 것인가. 순간 소름이 확 끼치고 공포가 온몸을 감쌌다. 나는 급히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솜인형을 확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시 그 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여봤지만, 언제 TV소리가 들렸냐는 듯 적막함만 가득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안방으로 달려가 언제 방으로 들어갔냐고 엄마를 깨워 묻고 싶었지만, 그 상황에서 도무지 거실로 나갈 용기가 들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인형을 부여잡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내가 잘 못 들은 것이길 바라며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공포에 떨었는지, 언제 내가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눈을 떠보니 몸을 작게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 날은 밝아 있었고, 나는 간밤의 소름 끼치는 일에 대해 엄마에게 얘기할 여유도 없이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 아무에게도 간 밤에 겪은 일을 털어놓지 못했다. 말을 하면, 불 꺼진 거실을 본 순간 느꼈던 공포감이 더 생생해질 것 같았고, 그저 내가 잘 못 들은 걸로 치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짧고 굵게 난 소리도 아니고, 20분을 넘어가는 시간 동안 들은 걸 그저 잘 못 들은 걸로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걸. 조현병이라도 있나 의심스럽겠지만, 그런 일을 겪은 것도 일생의 한 번뿐이었다. 그때 들은 여러 명의 수다 소리는 지금도 뭐였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