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 나이차지만, 어릴 때 5살이면 꽤 큰 차이가 느껴졌다. 내가 한글을 읽고 숫자를 익히고 있을 때 동생은 땅바닥에서 버둥거리는 갓난아기였고, 내가 중학교 입학을 준비할 때 동생은 막 초등학교에 적응하고 있었으며, 내가 고등학생 때도 여전히 동생은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애매한 나이차이 때문에 우리가 같은 학교를 다닌 건 딱 1년뿐이었다. 내가 6학년, 동생이 1학년 때. 같은 학교라고 해도 이제 막 학교라는 곳에 입학한 동생은 빠르면 12시, 늦어도 1시에서 2시에 수업이 끝났다. 고학년이었던 나는 빨라도 3시, 이것저것 수업 외 활동이 생기면 5시~6시에 하교할 때도 있었다. 그러니 내가 집에 들어가면 이미 동생은 간식 먹고 놀다 낮잠까지 한 숨 푹 자고 난 상태였다.
이 날도 여느 때처럼 4시 정도에 집에 들어갔는데, 집이 난장판이었다. 모르는 애들 열댓 명이 떼거지로 집 안팎으로 뛰어다니고 있었고, 엄마는 주방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치우고 동시에 또 요리하느라 정신이 나가 보였다. 부대 안 무덤가 외딴집에 살 때였기에, 찾아올 수 있는 친구가 없었고 늘 고요한 집이었는데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나에게, 엄마는 나중에 설명할 테니 그릇 치우는 거나 도와 달라고 했다. 지쳐 보이는 엄마 얼굴에 시끄러운 애들 소리가 겹쳐, 더 이상 뭘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스름이 깔려 올 때쯤 놀다 지친 애들이 드디어 간다고 했고, 그 애들을 차에 태워 보낸 뒤에야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들을 수 있었다.
사실 그날은 동생 생일이었다. 그런데 가족들이 각자 바쁘다 보니 공교롭게 그날이 동생 생일인 걸 모두 잊고 있었다. 사실 생일이라는 걸 알았다 해도 뭐 대단한 걸 한다기보다 그냥 케이크 하나 사서 불고 끝내는 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생일 당사자인 동생은 자기 생일을 잊을 리 없었고, 마침 1학년 교실 게시판에는 그 달의 생일인 아이들의 이름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동생 반 친구들까지도 모두 그날이 동생 생일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오늘 너 생일이면 집에서 생일파티 하겠네? 맛있는 거 먹을 거지? 나도 초대할 거야?”라고 물어오는 친구들에게 동생은 당연히 생일 파티를 할 거고, 다 같이 우리 집에 가자고 해버렸다.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늦가을이 생일이었던 동생은, 지금까지 반 친구들이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하는 걸 봐왔고, 당연히 본인도 그렇게 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걸 자기 혼자 생각하고, 엄마와 전혀 상의를 안 했다는 것. 그냥 생일이 되면 집에 알아서 음식이 차려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또 그날따라 동생 하교를 위해 아빠 부대 지프차가 와 있었다. 우리 집에는 중고 프라이드 차가 있었는데, 주로 그 차로 나와 동생이 등하교를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차로 30분 거리에, 버스도 안 다니는 시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마침 볼일이 있어 그 차를 타고 외출 중이었고, 동생 하교 시간을 맞출 수 없던 엄마는 아빠에게 부탁을 했다. 부대에는 일명 ‘찝차’라 불리는 군대용 지프차가 있었고, 아빠가 업무용으로 타던 차였지만, 매일 탈 일이 있던 건 아니었다. 어차피 부대 안 관사에 살아서 출퇴근도 걸어서 했고, 딱히 외근이 있는 게 아니면 종일 가만히 멈춰 있기도 한 차량이었다. 본래대로 프라이드 차가 동생을 데리러 왔다면, 작은 경차였기에 아무리 애들이라고 해도 4명 정도밖에는 못 탔을 것이다. 하지만 지프차는 뒤에 무게나가는 물건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한 공간이 있는 차였기에, 조그마한 애들이 우르르 그 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온 것이었다. 동생을 데리러 온 지프차 운전병도, 차가 꽉 찰 정도로 애들이 몰려 타자 당황스러웠지만, 그때 핸드폰을 갖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동생이 반 친구들이라고 하자 그냥 아무 말 없이 태워 올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군인 자식인지도, 군부대 안에 사는지도 몰랐던 애들은 지프차를 타는 것도, 집에 가기 위해 군대 초소를 통과해야 하는 것도 마냥 신기해했다.
반대로 엄마는 당황 그 자체였다. 볼일을 마치고 동생보다 집에 몇 분 일찍 와 있던 엄마는 군대지프차에서 모르는 애들이 쏟아져 내리자 말을 잇지 못했다. 천진난만하게 “엄마, 우리 반 친구들이야. 오늘 내 생일이잖아. 생일 파티 하러 왔어.”라고 말하는 동생에게 엄마가 뭐라 할 수 있었겠는가. 뭐라고 한들 자기 이름도 간신히 쓰는 어린애가 미리 상의가 필요했단 걸 알아듣기나 했을까. 방법이 없었다. 그 길로 다시 바로 차를 끌고 나간 엄마는 급하게 마트에서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식재료를 쓸어 담아왔고, 배고프다고 먹을 건 어디 있냐고 난리 치는 어린애들 앞에서 쉬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사단에 화가 나기도 한 엄마는, 애들이 가고 나면 동생에게 호통을 칠까도 했지만, 먼저 생일을 기억하고 같이 생일파티에 대해서 의논해 주지 못한 게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해, 그저 축하한다는 말만 해주고 말았다.
나는 고생한 엄마 속도 모르고, 말없이 반 친구들을 이끌고 온 동생도, 하필이면 그들을 모두 데리고 올 수 있도록 부대 지프차가 학교로 간 우연도, 이 모든 게 그저 웃겨서 목이 아프도록 웃어댔다. 그 이후로 최대한 가족들은 동생 생일을 기억하려고 애썼고, 동생도 말없이 친구들을 초대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종종 그런 게 진짜 깜짝 생일 파티가 아닌가 생각한다. 생일 당사자가 아닌 엄마가 깜짝 놀라는 파티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