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에서 근무를 많이 했던 아빠 덕에 여러 강원도 지역에서 살아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시골이었던 곳은 철원이었다. 철원은 주소부터 매우 시골이란 걸 알 수 있는데, 현재도 철원 지역 주소를 보면 ‘읍’, 과 ‘리’가 있다. 물론 내가 살았던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반 친구들 중에서는 그 ‘읍내’에 사는 애들도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도 차를 타고 30분 이상 들어가야 하는 곳에 살았다. 등하교 길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논과 밭뿐이었으며, 비포장도로였기에 차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집은 강원도 철원, 그 안에서도 깊숙이 들어가 있는 군부대였기 때문이다. 부대 안 관사가 우리 집이었다. 현재는 군인들 관사나 아파트가 많이 리모델링되고 새로 지어진 곳도 있다고는 하지만, 예전엔 그렇게 낡고 좁을 수가 없었다. 부대 안에 있는 관사는 아파트가 아니라 크기는 넓었지만, 거실만 되게 크고 방들은 작게 만든 정말 이상한 구조였다. 그리고 산속에 있는 집답게, 생전 처음 보는 벌레들이 가택신마냥 집을 지키고 있었고, 그 크기 또한 도시의 그것과는 달리 거대했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집 주변의 반이 누군가의 무덤으로 둘러 쌓여 있었던 것이다. 집 입구로 차가 들어오는 길 외에는 2~3m 정도 되는 높이로 돌담 같은 게 쌓여 있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이 집의 영역인지 자연스레 알 수 있는 형태였다. 돌담 위로도 땅이 있었고, 그곳은 산 길로 이어져 있었으며 바로 그 돌담 위 땅에 여러 개의 무덤들이 있었다. 한 개의 무덤이 집 근처에 있어도 꺼림칙했을 텐데, 네 개의 무덤이 집 주변으로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 낮이건 밤이건 그 모습은 꽤나 으스스해 보였다. 실제로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는 무덤 주인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성묘를 하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무덤들이 둘러싼 집에 산다는 게 어린 마음에도 영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집 뒷마당 돌담 바로 위 땅에는 작게 텃밭을 만들어 야채를 가꾸기도 하셨다.
우리 집이 무덤가에 있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으로 이사 간 첫날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꿈을 꿨다. 나는 그리 잠꼬대가 심하지 않은 편인데, 잠꼬대라고 해봤자 이불 좀 걷어차고 약간 웅얼거릴 때가 있는 정도였다. 나쁜 꿈을 꾸더라도 잠에서 깰 때는 조용히 일어났으며, 자다가 갑자기 놀라 소리를 지르지는 일도 없다. 심지어 나는 지금까지 가위에 눌려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잠은 정말 얌전하게 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덤가 집으로 이사한 날은 이상한 꿈을 꾸는 경험을 했다. 이사 첫날이었기에 아직 짐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 큰 안방에 가족이 모여 잤다. 엄마는 늦은 시간까지 부엌살림을 정리하고 있었고, 나는 바닥에 요를 깔고 동생과 누워 곤히 자고 있었는데, 꿈에서 갑자기 얼굴이 잘 안 보이는 어떤 남자가 굴곡진 날카로운 칼을 들고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당연히 놀라 도망쳤고, 그 꿈속 남자도 칼을 들고 나를 죽이려는 듯 뛰어왔다. 열심히 뛰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고, 담벼락에 등을 댄 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게 다가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그 칼을 내 흉부에 꽂았다. 그 순간 나는 실제 일어난 일인 듯 ‘악’ 소리를 길게 지르고 상반신을 일으키며 잠에서 깼다. 부엌에 있던 엄마도 내가 소리를 지르자 놀라 방에 들어왔고, 지금까지 자다가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다며 다시 자라고 하고 나가셨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날 외에는 단 한 번도 자다 소리 지르며 깨거나 한 적이 없다. 현실에서 소리를 지를 정도로 생생했던 꿈이었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이사한 집을 둘러보다 무덤들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물론 그저 이사하느라 피곤해서 그런 꿈을 꿨을 수도 있지만, 인생의 반을 이사 다녔는데 굳이 그때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첫날 외에는 그런 꿈을 꾸지 않았지만, 후에는 꿈이 아닌 실제 이상한 일을 겪기도 했다. 그 이야기는 추후에 하려고 한다. 이 무덤가 집에서 우리 가족은 3년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