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해. 공군 본부 근처에는 당연히 그쪽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이 많이 있고, 그에 따라 지역 하나 전체가 거의 군인 가족들의 소비로 인해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군인 아파트에는 육. 해. 공 따질 것 없이 많은 군인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군인 자녀들이 가는 학교도 군인 아파트 바로 앞에 있다. 군인 자녀들만 다니는 학교는 아니었지만, 학생의 90%가 군인 자녀들이었다. 10%는 그 지역에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의 자녀들이다.
완전한 계급 사회인 군대에서는 나이 상관없이 남편의 계급으로 아내들도 호칭을 정했고, 옆에서 그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계급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때론 아이들끼리 아버지의 계급을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유치한 질문은 주로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랬고, 중학교에서는 달랐다.
같은 반 학생들끼리 그런 걸 따지는 건 유치하고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아버린 데다, 부모님 시대 때는 거의 비슷한 나이대에 결혼하고 나이를 낳았기 때문에, 중학생이었던 나 정도의 자녀를 가진 부모님의 계급도 거의 비슷비슷했다.
그런데 특이하게 같은 학년 학생 중 아버지가 벌써 장군 계급을 단 아이가 있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우리 나이대의 자녀를 둔 아버지가 장군 계급이라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런 애가 옆 반에 있다는 게 아이들 사이에서 알려졌다. 학교에서는 아버지들의 계급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게 '대단하다', '위화감 든다', 뭐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신기하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주변 친구들은 장난으로 그를 ‘장군의 아들’이라 불렀다. 옛날 드라마 중에 그와 똑같은 이름도 있었기 때문에 순전히 별명 같은 거였다.
하지만 그 아이를 부르는 이 호칭이 선생님들을 식겁하게 했다. 학교 전체 체육대회 때의 일이다. 체육대회 종목 중 축구가 있었는데, 점심시간마다 5분 만에 밥 먹고 매일 축구하기 바쁜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이 종목은 참여하고 싶은 게임 1순위였다. 심판은 선생님이 보지만 축구 해설도 애들이 했다. 축구 좋아하고 말 재미있게 잘하는 아이가 축구 해설을 맡았고, 방송부 마이크에 대고 게임 내내 우스갯소리와 농담을 섞어 주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 줬다. 축구 게임을 보는 것보다 해설하는 애 농담 듣는 게 더 인기가 좋았다.
축구 해설 도중, 그가 아는 친구들은 별명을 부르면서 해설을 했는데, 예를 들어 “ 5반의 ‘소닉’ 골대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달려만 나가고 공은 뺏기는군요” 뭐 이런 식이 었다. 때문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친구를 평소대로 ‘장군의 아들’이라 칭하며 얘기했다. “아, 장군의 아들, 오늘은 게임이 잘 안 되나 봅니다. 연속으로 골 실패하네요.”, “ 6반 반장이 장군의 아들을 마크하고 있네요.”, “ 장군의 아들이 오리 궁둥이한테 패스합니다!” 아이들은 그의 별명이 장군의 아들이고, 거기엔 별명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아무 위화감 없이 즐기고 있었다.
“장군의 아들! 좀 제대로 뛰어라.” 이렇게 응원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운동장 스피커로 그 해설을 듣고 있던 선생님들은 당황했다. 학교에서 학생 아버지의 계급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이것 하나로 모두가 평등해야 할 학교 안에서 혹시 군인 부모들의 계급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엄청나게 심려하기 시작했다. 그냥 별명으로 넘기기엔 그 아이의 아버지가 실제 장군 계급이었기에 선생님들은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전반전이 끝나고 축구 해설을 보던 아이가 교무실로 불려 나갔다. 그냥 별명을 부른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후반전에선 ‘장군의 아들’이 언급되는 일이 없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아이들은 ‘우리끼리 아무 생각 없이 부르는 건데 왜 선생님들은 별명 하나에 그렇게 오버하냐’며 우스워했지만, 아무래도 군인 자녀 학교라고 해도 무방할 만한 곳이기에, 선생님들이 작은 거 하나에도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군인아파트 단지에 있는 학교여도, 그와는 구분되는 환경을 만들려고 나름의 애를 썼던 것이, 결국은 장군의 아들을 장군의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태를 낳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