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울고 싶을 때 총을 든 사람에게로 가
지금은 없겠지만, 전에는 초소가 있는 군인아파트가 있었다. 아파트에 초소가 있다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일반 아파트에 경비실과 경비원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단지 모양이 경비실 대신 군부대 초소와 같았고, 그 초소를 젊은 군인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었을 뿐. 군인 아파트라고 해도 군부대가 아니라 아이들과 군인 가족들이 살고 있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아파트 단지였는데 굳이 초소를 아파트 안에 둔 게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핸드폰을 흔히 들고 다니던 시기도 아니었기에, 긴급 상황을 대비해 일종의 연락책의 임무를 주고 초소를 만들어 군인을 배치한 걸로 생각된다.
그 아파트에 살 때 나는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꼬맹이었다. 유치원도 아닌 ‘유아원’을 다니고 있었고, 왼손 오른손도 자주 헷갈려했다. 혼자 그네 타는 것도 어려워해 맨날 엄마한테 밀어달라고 때 썼으며, 유아원에서 돌아오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또래들과 시멘트 언덕을 오르면서 놀았다. 엄마는 전업 주부였기에 내가 유아원에서 돌아오면 항상 집에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주로 외출은 엄마와 함께 했지만, 동네 애들이랑 놀 때는 혼자 나가 놀다가 들어왔다. 내가 혼자 나가도 엄마가 걱정을 안 했던 이유는 늘 군인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았기 때문이고, 겁 많은 소심이었기에 아파트 단지 밖으로 벗어나지도 않았다. 밖을 벗어나도 어차피 갈 데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날도 주말이라 집에 있기 심심해 혼자 밖에 나가 동네 애들이랑 흙을 파며 놀았다. 막 봄 볕이 넓어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따뜻한 계절이었다. 한동안 추워서 집에만 웅크리고 있다가 오래간만에 밖에 나가 볕도 쬐고 또래들이랑 시답지 않은 소꿉놀이로 킬킬대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노래도 부르고 엇박자로 발도 구르면서 갔다. 살던 집은 4층이었는데, 성인 크기에 맞춰진 차갑고 높은 시멘트 계단도 그날은 올라가는 게 힘들지 않았다. 하늘색도 초록색도 아닌 애매한 색의 페인트가 칠해진 낡은 철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돌렸다. 만으로 네 살이었던 나는 팔을 끝까지 쭉 뻗어야 손잡이에 손이 닿을 수 있었고, 둥글둥글한 쇠 손잡이도 한 손에 다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반 바퀴 돌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이 안 열렸다.
아무리 열심히 발 끝을 세우고 돌려도 문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때까지는 살면서 집 문이 잠긴 경험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자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불렀고, 안에서 들리는 대답 대신 복도에 내 목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갈 곳이 없어진 나는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나는 집 열쇠도 없었다. 내가 갖고 있으면 잃어버린다고 주지 않았고, 내가 집에 갈 시간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으니 열쇠를 쓸 일도 없었다. 갈 곳이 없어진 나는 길을 걸으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마치 눈앞에 엄마가 없으면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영아처럼, 나는 그때 가족이 나를 버리고 어딘가로 몰래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랑 떨어져 본 경험이 별로 없었고, 이사를 자주 했기 때문이었을까. 집에 사람이 없으면 어디 갔나 보다 하고 계단에 앉아 기다릴 생각을 못 했다.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고, 다시는 엄마 아빠를 볼 수 없을 것 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나는 버려졌다고,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알리고 싶은데 노을이 지는 어스름한 시간이라 모두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아파트 안 초소로 향했다. 거기에는 늘 장총을 들고 근무하는 군인아저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키가 본인 허벅지까지도 못 미치는 어린애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다가오자 초소병은 매우 당황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그곳은 아파트 경비실은 아니었기에 애가 당당하게 들어오는 것도 처음이었을 텐데, 이제 20대 초중반인 초소병이 애를 능숙하게 대할 리도 없었다.
뚝딱거리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집 문이 잠겼어요. 엄마, 아빠를 잃어버렸어요”라고 말하고 다시 서럽게 울어댔다. 그칠 줄 모르는 눈물에, 그는 장총을 옆으로 내려놓고 서랍 안에 숨겨 놨던 과자를 한 봉지 꺼내 들었다. 그가 주는 과자를 먹으니 단 맛에 서서히 눈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역시 어린애 달래는 데는 단 것만 한 게 없나 보다. 나는 아예 초소에 자리를 잡고 떠날 생각을 안 했고, 초소병 또한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나를 넘길 수도 없었다. 얼굴이 벌게진 채 과자를 먹는 나를 바라보다 집 전화번호를 아냐고 물어봤다. 그제야 나는 내가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게 생각났다. 그때 내가 외우고 있었던 우리 집 정보는 엄마와 아빠 이름, 집 전화번호, 집 동 호수였다. 혹시나 해서 엄마가 이 네 가지는 열심히 외우게 했는데 지금까지 쓸 일은 별로 없었기에, 내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것조차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는 내게 군대용 전화기를 내어 주며 집에 전화를 해 보라고 했다. 버튼을 누르면 일반 전화로도 쓸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집에 아무도 없는데 전화해 봤자 누가 받겠냐고 했지만, 달리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이게 웬일. 전화를 하니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엄마 집이야? 어디 갔었어?”
“집이지, 잠깐 나갔다 왔어. 근데 너 어디서 전화하는 거야?”
세상 끝난 듯이 울어대며 여기로 왔는데, 집으로 전화하자마자 바로 엄마가 받아서 이번에는 내가 당황스러웠다. 민망함에 고개를 숙이고 초소병에게 엄마가 집에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내 민망함과는 상관없이 한시름 놨다는 표정으로 어서 가보라고 손짓했다. 다시 돌아온 집 손잡이는 부드럽게 열렸고, 집에는 평소처럼 엄마 아빠가 그대로 있었다. 엄마는 내 손에 들린 과자가 어디서 난 건지 물었다. 초소에 갔다고 하자 어이없어했다. 나는 다시금 그 초소병에게 감사를 표해야 했지만, 집 문이 잠겼다고 대성통곡하며 찾아간 게 그때도 민망하다는 걸 느껴서였는지, 그다음부터는 일부러 초소를 피해 둘러 다녔다. 일반적인 아이라면 그런 상황에 이웃집 문을 두드리지, 굳이 총을 들고 서 있는 사람에게 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시간이 흘러 초소병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그저 나도 헛웃음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