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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Sep 19. 2024

미국 시골에서 제일 무서운 소리

미국살이 초반에는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 중 가장 무서웠던 건 역시 ‘탕탕’ 거리는 소리였다. 한국에서라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소리지만, 이곳에서는 이게 총소리인지 폭죽 소리인지 타이어 펑크 나는 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지역임에도, 총격 사건이 잊을만하면 지역 뉴스에 나왔기 때문에, 늘 밖에서 총소리 비슷한 게 나면 곤두섰다. 숲이나 둘레길을 걸을 때도, 주변에 야외 사격장이나 사냥터가 있으면 ‘탕탕’ 거리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며 걸었다. 지금은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면 전보다는 덜 신경 쓰게 되었다. 그런데 근래 아주 낯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우리 집에서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 안이 아니라 뒷마당이다. 


이른 아침, 쓰레기 통을 내놓기 위해 뒷마당으로 갔는데 ‘칵칵’ 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새소리도 아니고 물건이 바람이 흔들리는 소리도 아닌,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집 안에 있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거슬리는 소리였다.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천천히 집 주변을 걷다가 진물이 잔뜩 흐르는 나무를 발견했다. 울타리 바로 옆에 심어져 있는 나무였다. 아주 높이 자란 세 그루의 소나무로, 우리 집 영역에 있는 나무다. 거기서 바로 그 ‘칵칵’ 대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무가 말을 할리도 없고 스스로 움직여 소리를 낼 리도 없으니,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는데도 내게는 여전히 나무가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내는지 미스터리였다. 내가 마당에 서서 한참 동안 안 들어오자 따라 나온 남편 역시 그 소리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낯선 소리지만 어릴 때 들어본 적이 있는 소리라며 골똘히 생각하다, 나무 곳곳이 작은 점 모양으로 파여 있는 걸 보고 바로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냈다. 나무에서 나는 소리는 맞지만, 소리는 나무가 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나무속으로 들어가 그걸 갉아먹고 있는 벌레였던 것이다. 


이들은 딱정벌레의 일종으로 잘 다듬어진 나무보다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좋아하는지, 나무속으로 파고 들어가 나무가 쓰러질 때까지 먹는 애들이다. 남편이 어릴 때 살던 집에도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가 있었는데, 그냥 놔두었다가 나무가 갑자기 집 쪽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큰 곤욕을 겪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현재 갉아 먹히고 있는 우리 집 나무들도 고개를 완전히 젖히고 봐야 할 정도로 높이 자란 탓에, 만일 갑자기 쓰러지면 우리 집이나 이웃집 지붕을 깔아뭉갤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이 ‘칵칵’ 거리는 벌레의 식사 소리가, 나무가 아닌 내 목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방법은 하나. 벌레가 나무를 다 먹어 쓰러뜨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나무에서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소리가 나는 걸 보면, 이 벌레는 나무가 쓰러지기 전까지 절대 식사를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어느 집이 뭉개지건 손 놓고 있다가는 조만간 대참사가 날 것이 분명했다. 서둘러 전문 나무꾼을 불러 견적을 받았다. 나무꾼이 오자 벌레에게 먹히고 있는 나무는 한 그루가 아닌 두 그루라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 그 나무들을 베어주는 대가로 나무꾼은 300만 원이 넘는 돈을 요구했다. 나무 베어주는 데 300만 원이 넘는다니! 일반 회사원들의 한 달 월급 정도 되는 돈 아닌가! 갑작스러운 지출과 큰 금액에 머리는 어지럽고 심장은 벌렁벌렁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있는 도끼로 내가 찍어 베어버리고 싶지만, 끝도 없이 뻗은 이 큰 나무를 개인이 혼자 도끼 들고 설쳤다가 무슨 일을 낼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무꾼의 도움을 물리칠 수도 없었다. 


미국 시골 주택에 산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다른 것보다 집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 매달 나가는 집 대출금 외에도, 주택 보험료 (자연재해가 심한 곳이라 안 들 수가 없다), 병충 퇴치 이용료, ‘터마이트’ 관리 이용료, HOA(공동 지역 관리비) 등 집 관련으로 나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태풍과 벌레 많은 해안가 더운 지역이라 위의 것들을 무시하고 살 수 없으니 여기 산다면 필수 비용이다. 눈 안 내리는 남쪽이라 거진 4월부터 10월 정도까지 에어컨을 틀고 살기 때문에 전기세가 공과금에서 얼마나 많이 차지하는지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최근에는 집 Gutter(홈통) 수리도 해서 추가 요금이 들어갔는데, 먹깨비 벌레가 하필이면 우리 집 나무를 고르는 바람에 이번 달에는 추가로 300이 날아갈 예정이다. 탕탕 거리는 총소리가 무서운 게 아니라, 실제로는 ‘칵칵’ 거리는 벌레 먹는 소리가 제일 무서운 것이었다.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오늘은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아스팔트 동네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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