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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느끼는 열등감

by 라봇 Mar 19. 2025

본래 나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사람이다, 아니 현재도 그런 사람이다. 건강하지 않은 생각이지만 어릴 때는 나름 자수성가했다 할 수 있는 아버지한테 열등감이 있었다. 이것도 K-장녀 특징인 줄은 모르겠지만 첫 째이기 때문에 더욱이 부모님의 기대감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이 열등감이 남편을 대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본래 음향기기 쪽을 전공한 사람으로, 졸업 후 한동안 그 업계에서 일하다가 관둔 후, 홀로 코딩을 독학해 현재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전공자도 아니고 그쪽으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같이 베트남 살이를 할 때 그곳에서 개발자로 첫 경력을 쌓았고, 그걸 살려서 미국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신혼 생활을 미국에서 꾸렸다. 나야 당시 구체적으로 살고 싶은 나라나 도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외국 생활을 4년 넘게 하며 본국을 그리워하고 있는 남편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언어, 문화, 시스템 모든 것이 익숙한 미국인인 남편과,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온 외국인인 내가 같이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에 있어, 남편의 역할이 거의 80%를 넘었다. 본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어리숙해 보이던 모습과 달리, 본인이 익숙한 나라에 오니 문제 해결 능력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경제적인 부분부터 집을 구하고 관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부수적인 부분, 병원이나 보험에 관련된 것부터 각종 필요한 서류들을 챙기고 알아보는 것 등, 남편이 찾아서 정리를 해오면 나는 질문하고 이해하고 동의를 해주는 패턴이었다. 나도 조금 더 주도적으로 행동하고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낯선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고 배우고, 번역하고 이해해 일처리를 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말도 안 됐으니, 남편이 하는 것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졌다. 


남편은 그에 대해 불만은 없었으나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를 내가 나누기 어려우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늘 공존했고, 이곳에서 본인의 역할이 돋보이는 남편과 달리 그저 이곳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걸로 스스로를 다독였던 내가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현지인과 외국인이라는 동등하지 않은 조건 상황에서 그렇게 따지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한껏 작아진 나는 의식적으로 건 무의식적으로 건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랑만 하기도 모자란 대상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게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본래 사람들은 멀리 있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더 쉽게 느낀다. 비교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열등감이라는 존재도 내가 한국에 버리고 오지 못한 비교라는 습관에서 시작된 것 같다. 가까이 있는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니 이런 감정이 더 커진다. 어떤 사람이 곁에 와도 비교하지 않는 단단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기에는 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더 지나치면 괜한 피해의식으로 나를 더 깎아 먹고 불행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오늘부터 열등감과 비교 따위 안드로메다에 날려버려야지,라고 다짐한들 당장 가능한 것도 아니다. 결국은 내가 이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 같다. 계속 이 감정에 깊이 빠지다 보면 여기서 내 자존감은 더 바닥을 치고 주변인들에게 심술이나 부릴 것이고, 이 감정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스스로를 더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로 쓸지도 모른다. 예전에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영어 못 해서 눈치 보던 게 싫어 빡세게 공부했던 것처럼, 결국 나 스스로를 구원할 사람은 나뿐이란 걸 다시 한번 인지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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