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처음 한국에서 살았던 동네는 유흥가와 식당들이 즐비한 한 마디로 먹자골목 번화가였다. 그 동네 근처에 위치해 있던 직장에서, 그곳에 거주지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이미 살 곳이 정해진 상태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남편은 다른 곳에 살 선택지가 없었다. 만일 다른 곳에 살고 싶다고 한다면 직장에서 현재의 월세만큼은 지원해 줄 것이었지만, 당시 한국어를 모르는 것은 기본이요, 아시아 자체가 처음이었던 남편은 굳이 다른 집을 찾겠다며 고생을 자처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때문에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야행성인 한국인들이 술 먹는 소리, 밖에서 떠드는 소리를 자장가로 생각하고 잠을 청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최대한 조용한 곳에 살고 싶어 했다. 어차피 그렇게 원하지 않아도 미국 대부분의 땅은 시골이거니와, 그것도 남부 끝 마을에 위치한 이 동네에서는 방정맞은 이웃을 만나는 게 아니면 조용함을 넘어 고요하기까지 했다. 한국의 조용한 주택 단지에 사는 우리 부모님도, 나의 미국 집을 방문했을 때 이 동네 집들은 다 빈집이냐며 사람새끼 한 명 안 보이니 이상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번화가 한가운데 있었던 오피스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 교외의 집은 매우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그것은 낮 동안이지 밤에는 의외로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 침대를 박차고 나갈 때가 있다.
일단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목조 주택은 딱히 뭐가 없어도 툭하면 이상한 소리를 낸다. ‘툭, 삐걱, 투둑..’ 등 딱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일상이다. 쥐가 돌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집이 스스로 소리를 내니 때로는 집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콘크리트가 아닌 목조로 지어진 집은 숨도 쉬나 보다. 주택의 이런 특징을 몰랐다면 집에서 나는 소리가 무서웠겠지만, 어릴 때 살았던 주택도 그랬기에 집이 내는 소리는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딱정벌레나 ‘터마이트’처럼 집을 갈아먹는 소리는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시끄러운 것은 바로 자연의 소리다. 무슨 말인고 하니 말 그대로 자연에 살고 있는 온갖 생명체들이 밤에 소리를 낸다. 우리 동네 이름에는 lake와 forest가 들어갈 정도로 정말 숲과 호수가 있는 부지에 지어진 집이다. 그러니 온갖 짐승들과 같이 더불어 살아간다. 밤에 사냥을 하는 부엉이와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베이스를 깔면, 호숫가에 사는 개구리와 두꺼비는 그 올빼미 소리에 박자를 맞춰 울어댄다. 흔한 건 아니지만 간혹 박쥐가 날아다니기도 하는데, 그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바람 소리는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잠깐 울리는 심벌즈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다 약과다. 진짜 시끄러운 녀석은 따로 있다. 바로 코요테다.
캠핑을 하러 숲 깊이 들어가 들을 때는 코요테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지만, 집에서 들으면 이게 이웃집 개가 짖는 소리인지, 야생 동물이 내는 소리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오늘따라 뉘 집 개가 이리 잠도 안 자고 밤새 울어대나 싶어 개 주인을 찾으러 한밤중 잠옷 바람에 나갔는데, 알고 보니 숲 속에 모여 있는 코요테 무리가 내는 소리 라는 걸 알고 등골이 약간 서늘해진 적이 있다. 겁이 많은 동물인 줄 알았더니, 밤에는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서슴없이 내려와 있는 것이다. 멀리 쫓기 위해 작은 돌을 들어 던지며 위협을 가했는데도 번뜩이는 눈을 빛내며 발가락 하나 꼼지락거리지 않았다. 당연히 그냥 집으로 돌아와 코요테 무리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야 했다. 너구리, 여우, 보바캣 같은 동물이 내는 소리는 꼭 사람이 소리 지르는 것 같아 소름 끼치기도 하다.
누가 시골의 밤이 조용하다 했던가. 도시의 밤이나 시골의 밤이나 시끌시끌한 건 이곳도 똑같다. 단지 취객의 소리에서 야생 동물의 소리로 그 종류가 바뀌었을 뿐이다. 밤에 사람이 시끄러운 건 경찰이라도 부를 수 있지, 동물 소리가 시끄러운 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밤에 깨어나는 동물이 밤에 활동한다는 건데 그걸 가지고 뭘 어쩌겠는가. 애초에 그들의 터였던 숲 속에 사람이 집을 짓고 사는 게 잘못이다. 이렇게 그냥 인간의 업보라 생각하며 시끄러운 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