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내가 군인이 되길 바랐다. 아주 간절한 바람이었던 건 아니지만, 군인 부녀 장교를 꿈꾸고 있다는 걸 은근슬쩍 내비친 적이 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직업군인의 장점에 대해서 얘기해 준 적은 없어도, 아무래도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군에 연금이나 주거 제공 같은 혜택을 받고,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걸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내가 군인이 되길 바랐던 진짜 이유는 추측 건데 부녀 군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아빠의 동료분들 중에서는 자식이, 특히 아들이 자기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된 걸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자식이 대를 이어 내 직업을 이어받았다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갖고 계셨다. 아빠도 내심 그게 부러웠던 모양이다.
나도 아빠의 뜻에 따라 군인이 되었다면 참으로 멋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런 재능은 없었다. 나의 기질은 아빠와 많이 달랐고, 무엇보다도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타고나길 저질 체력에 근력이 부족해 체육 시간에 늘 꼴찌였다. 군인의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인 체력이 따라주질 않는데, 그걸 채울만한 열정 또한 없었다. 또 군 체계에서 제일 중요한, 일정한 규칙을 따르고 제한된 생활을 한다는 게, 자유롭게 지역을 오가며 노마드 생활을 꿈꾸는 내 성향과는 반대되는 일이었다. 일찍이 납득 가능한 이유 없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복종과 강요에 따르는 걸 굉장히 싫어했는데, 군대는 온갖 규율과 제한이 가득한 공간처럼 보였다. 다른 무엇보다 부모님을 따라 계속해서 학교를 옮겨야 했다는 게, 교우관계가 중요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였기에, 내 자식에게 같은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컸다. 내 감정만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절, 난 절대 군인이 되지도 않을 것이며, 군인과 결혼하지도 않을 거라는, 부모님에게 상처되는 말까지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불평불만만 가득했던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접하는 삶의 폭이 넓어지자,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내 성장과정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바뀌는 주변 환경과 사람이 힘들었던 만큼, 낯선 장소에 가도 빨리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과 쉽게 어울리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해야 할 때 두려움도 없는 편이고, 오히려 안 해봤던 것들을 시도해보려 하는 편이다. 인연을 소중히 하는 법도 배웠다. 친구를 사귀어도 언제 또 헤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있었기에,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인연을 오래 유지하도록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되었다. 군복무를 하지는 않았지만, 군대에서 살아봤기에 보통의 한국여자보다 군대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단점은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상황을 바꾸긴 어려워도, 그걸 어떻게 활용해 가치 있게 쓸지는 내 몫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바라던 군인이 되지는 못 했지만, 군인 자식으로서 살았던 경험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토대로 이렇게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어린 시절을 충분히 가치 있게 보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기대된다. 앞으로의 삶을 살아냄에 있어, 군인의 자녀로서 보냈던 시간들이 어떻게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