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시골 깡촌에서 보냈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가족끼리 '밖'에서 무언가를 함께한 추억은 별로 없다. 내 기억 속에 우리 가족은 주로 '실내'에 있었다. 밖으로 놀러 다닌 게 그리 많지는 않다는 얘기다. 물론 이건 굉장히 상대적인 부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수영, 낚시, 등산, 캠핑, 스키 같은 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야외 스포츠에 대한 경험이 적었고, 경험이 있는 것들은 학교 수업이나 내가 있던 환경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여행에 대한 경험도 적었는데,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안 가본 곳 천지고, 특히 남쪽 지방에 대해서는 많이 무지하다. 어릴 때의 추억과 경험은 주로 부모님들의 성향과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주 5일제지만, 돌아보면 한국은 2000년대부터 단계적으로 주5일제가 적용됐다. 주 5일 일하는 것도 힘들어서 주말에 뻗어있는 직장인들이 많은데, 아빠는 주 6일 꼬박 출근하고 하루 쉬는 날, 아이들을 위해서 매주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니며 놀아줄 수 있는 아빠는 아니었다. 특히 잠이 많은 내 아버지는 일요일이면 엄마와 내가 깨울 때까지 한없이 누워있었다. 보다 못한 엄마가 정오쯤에 우리까지 동원해, 일요일인데 집에만 있는 애들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다그치면, 가끔 외식을 나가거나 했고, 외식 다음으로 많이 데리고 간 곳은 목욕탕이었다. 종교가 없는 우리 부모님은 심지어 매년 성탄절 때마다 쉬는 날이라고 우리를 목욕탕에 데리고 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이가 찰 때까지 나는 성탄절은 목욕탕 가는 날인 줄 알았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있는 휴가 때, 혹은 명절에 할머니 댁에 들리면서, 근처 국립공원이나 바닷가에 데리고 가 준 기억이 있다. 횟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성인이 되어보니, 전 국민이 비슷한 시기에 움직일 때, 그 교통체증을 뚫고 간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다만 어릴 때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체력을 요구하는 건지 알 수 없었기에, 학교에서 친구들이 주말에 어디 갔다 자랑을 하면 자존심 때문에 티는 못 내도 속으로 엄청 부러워했다.
하지만 주 5일제가 군인들에게 정착되고 나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방 부대 지휘관직을 주로 맡아서 하던 아빠는, 주말이건 명절이건 상관없이 무조건 부대에 붙어있어야 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는 중간에 전학을 가면 학업이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혼자 가족들과 떨어져 나와 친척들과 지내다가, 3학년이 됐을 때 엄마가 내가 있는 곳에 전셋집을 얻어 같이 살게 되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대로 전방 관사에 있어야 했기에 엄마가 주말마다 아빠가 있는 곳으로 왔다 갔다 하며 주말 부부를 자처했고, 나는 초등학생이었던 동생과 둘이서 주로 주말을 보냈다. 명절에도 아빠는 부대 안을 지키고 있어야 해서, 우리가 관사로 가서 간단한 명절 음식을 해 먹는 게 전부였다. 보직에 따라 다르겠지만 군인이라는 신분이 그리 자유로울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다. 아빠가 은퇴할 때까지 가족 다 같이 제주도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여행은 아빠도 좋아했지만,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비상 상황시 부대에 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휴가 때도 부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가지 않았다. 고작해야 나와 동생 학교 때문에 따로 얻어둔 경기도 집이나 서울로 가서, 못 봤던 지인들을 만날 뿐이었다.
시골에 살았을 땐 근처에 산이 많으니, 캠핑이나 등산 같은 건 자주 할 수 있지 않았겠나 싶지만, 아빠가 그런 걸 너무 싫어했다. 때마다 부대 훈련한다고 며칠 동안 산에 가서 텐트 치고 지내다 오는데, 그 힘든 걸 왜 굳이 쉬는 날에도 해야 하냐며 거부했고, 등산도 둘레길 정도 걷는 거면 모를까 등반을 하는 거라면 훈련이 연상돼서 힘들다고 하셨다. TV에 나오는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 같은 걸 보며 내가 재미있겠다고 말하면, 실제 군용 수송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훈련을 했던 아빠는, 보기에만 그렇지 실제로는 심장 떨리게 무서운 일이라며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후기를 남겼다. 아빠는 타고나기를 밖에 나가 몸을 움직이는 걸 즐기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일종의 직업병인지 야외에서 할 수 있는 여러 레저 스포츠들은, 전부 부대 훈련이 연상된다며 즐기지를 못 하셨다. 그러니, 특정 지역에 무조건 머물러야 하는 제한된 환경과 성향, 직업병 때문에 우리 가족은 주로 어딜 놀러 가기보다는 '미식'과 '쉼'을 즐기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금은 아빠가 은퇴한 지 몇 년이 됐지만 여전히 절대 군대 훈련을 연상시키는 야외 활동은 하지 않으신다. 중년층이 즐기는 등산을 가는 일도 일절 없다. 운동을 하더라도 전혀 훈련스럽지 않은 산책이나 골프 같은 걸 하려 하신다. 반대로 나는 어릴 때 못 해봤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해외여행에 관심이 많고, 번지점프, 등산, 수영, 노지캠핑을 즐기고 있다. 아빠는 직업 때문에 안 했던 것들을, 딸은 아빠 직업 때문에 못 했던 걸 핑계로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