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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Sep 27. 2024

문화적 열등감으로 대단히 빈정상한 날

드레스덴 로열 팰리스 박물관

지난주 4일간 드레스덴 박물관에 출장이 있어 구시가지에 위치한 왕궁, 로열 팰리스를 찾았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궁으로 15세기 이래 선제후와 왕의 거처였다는데 2차 세계대전 폭격 후 완전히 파괴된 것을 그대로 재건해 놨다.


일행이었던 박물관 연구관은 이 재건 사업을 가리켜 “디즈니랜드 사업”이라고 부르며 쓴소리를 해댔다. “모든” 것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여 관광산업에 쓰는 것은 후세들이 전쟁의 참상을 잊고 아름다움에 도취해 놀이동산에서 즐기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역사를 잊은 민족은 발전할 수 없다고…40년간 박물관에서 역사와 유물을 다뤄온 전문가의 이 말은 공허한 입바른 말로 들리지 않았기에 절로 숙연해졌다.


내부는 Green Vault, Royal Parade Rooms, Renaissance Wing, Turkish Chamber, Giant Hall of the Armory 등으로 나뉘어 작슨가 당대의 놀라운 유산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왕의 어마무시한 권력과 돈지랄의 끝판왕이었다. 그들이 수집한 어마한 양의 보석과 예술품들은 물론, 당대 최고의 예술가, 수학자, 과학자 등의 인물을 섭외해서 자신의 명예욕과 물욕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 더 멋진 작품들을 만들게 한 결과물을 집대성해 놓은 방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입 떡 벌어지는 작품에 파묻혀 정신 못 차리고 대체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하냐 고민하다가 밥맛이 똑 떨어졌다.


왕들의 권력과 돈지랄에 비위가 상하고

예술가들의 재능과 천재성에 감탄하면서

2차 대전 폭격에서 이 무지막지하게 섬세한 유물들을 이 상태로 지켜낸 박물관 직원들의 헌신에 감동이 밀려왔다. 대단한 사람들…이 미친 아름다움의 극치가 이 상태로 현세에 전달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광기가 합쳐졌는가… 현기증이 일었다.

눈이 즐겁도 호기심을 팍팍 채워준 것은 고맙지만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해 낸일이 이런 돈지랄이라는 것에는 분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게 중한 것은 아름다움 보다는 정의인가? 아니면 무식하고 단순하다 보니 이런 예술품 앞에서 질투와 문화적 열등감에 똘똘 뭉쳐 화만 내고 있는가.


그날 박물관 투어로 만보를 훌쩍 넘어 걷고 밤에 뒤틀리는 다리를 달래며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에 밤새 내내 작센의 왕과 말을 타고 싸웠다. 돈지랄난 왕 놈의 모가지를 똥강! 하고 베었어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내 눈가가 축축한 거 보니 내가 베인 듯하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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