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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Oct 19. 2024

독일 책방에 한강의 책이 없는 이유

지난 두 주 개강의 여파로 일기계의 진면모를 지대로장착하고 짐승의 탈을 관리하지 않은 채 그대로 출근하고 집에 와 쓰러져 자기를 매일, 심지어 주말도 반납한 채 살았다. 얄팍한 월급에 비하면 이 노동의 강도는 말도 안 되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 “는 노비정신을 타고난 데다 386세대 세뇌교육이 단단히 짱박힌지라 엠쥐세대 같이 쿨하고 멋지게 살지 못하고 일 곁을 뜨지 못하며 살고 있다. 못난 것 같으니라고.


중노동을 하며 사는 중 단비와 같은 소식이 전해졌으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뜨아~ 연신 쏟아지는 기사와 비디오를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알고리듬은 나의 도파민 분출키를 잘 알기에 끊임없이 관련 정보를 내보내줬다. 유튜브 노벨상 소식을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틀어 놓고 같은 소식을 한국어로, 영어로, 독일어로 들었다. 나중에는 하나도 몬알아듣는 불어로도 나오더라. 그러면 어떠랴. 들어도 들어도 신나는 소식인데.


오늘 퇴근하자마자 늦은 점심을 비빔면으로 때우고 여유롭게 우리 동네에서 제법 큰 (나름 교보문고의 역할을 하는) 서점에 나왔다. 그리고는 네 층을 곳곳이 누비며 어딘가 있을 노벨상 수상작가를 위한 제대를 찾아 헤매었다.


한참을 돌았는데도 노벨상 특별 코너가 없다??? 국뽕에 차올라 오버했나 싶어 아시아 코너를 가 봤는데 거기에도 없다. 흠 노벨상 수상 작가이니 지역 딱지 붙은 코너가 아닌 일반 코너에 있겠구나!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시아 작가로 분류되지 않고- 이미 세계적 작가이고 독일에서는 특히 사랑받는 작가이기에 - 알파벳 순서 H 책장에 장장 3단을 차지하며 작품들이 꽂혀 있다. 그럼 한강 작가도 H이니 하루키 옆집쯤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보였다.


순간 치미는 분노! (아 갱년기 어쩔?). 이 싸람들이 노벨상 작가를 몰라보고 책준비도 안 해 놓았는가? 책 찾아주는 안내직원에게 조르르 달려가 채근하듯 물어봤다. 내 멋진, 원어민 한국어 발음으로 이름을 말하면 못 알아들을까 싶어서 “한 캉의 책을 찾고 있어요”라고 살짝 침을 튀기며 독일식으로 분명하게 탄원조로 “캉”을 발음했다.


그러자 대번에 그녀의 대답은

“완전히” 다 팔렸다! 였다. 독일어로 “완전히”는 콤플랫(영어의 completely처럼)인데 내가 한 “캉”에 힘주었던 것처럼 “플랫”발음에 힘을 빡 주어  내게 복수하듯 내뱉었다.


아 완판… 그리고는 친절하게 2주 동안 재고가 못 들어오고 온라인으로도 못 살 것이라 경고했다.


음… 나는 이미 한강 작품들이 집에 켜켜이 쌓여 있고 주요 장편은 다 읽었다. 까막눈인 독일어로도 집에

좀 비치하고자, 독일 사람들에게 난 척 좀 하려고 사러 왔는데 한 발, 아니 한참 늦었다.


알 수 없는 울컥함과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한강작가 책이 완판인데 왜 내가 고맙냐. 한강작가에 대한 경외심과는 별개로 내 안의 국가의식 (국민학교 때부터 처절하게 받은 애국과 충성 교육의 힘이) 뜨겁고 부끄러워 재빨리 책방을 나섰다.


내 복잡한 감정과 별개로 역사적임 일을 해낸 한강 작가님께 울 동네 빅서점 독일 책방 완판 2주를 진심 축하드린다 (나는 하루키도 무진장 좋아하는데 책방에 하루키 책들은 널려 깔렸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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