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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Sep 09. 2024

이태리 시골호텔 독일인들 - 조식 털기

부끄러움은 왜 나의 몫인가

이태리 가르다 호수가 언덕 아래로 눈앞에 펼쳐진, 하지만 너무 시골이고 먼발치로 호수를 보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오락 거리가 없는 조용한 에어 비앤비를 찾았다. 이태리 사람들과 이태리어에 묻혀 완벽한 이방인 (독일에서도 이방인이지만 가족과 더불어 이방인)이 되고 싶어서…


키 작은 올리브 나무가 즐비한 농장 한가운데의 숙소는 큰길에서 뚝 떨어져 차 한 데가 겨우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을 따라 한참 올라간 언덕 꼭대기에 위치하여 매우 조용하고 고즈넉하기 그지없었다.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니 아기자기한 조식 차림에 햇볕의 나라 이태리 답게 알록달록 당도 높은 과일들이 먹기 좋게 작은 크기로 썰려 가지런히 담겨 있다.


아~~~ 때깔도 좋고 먹기 좋은 남이 차려준 상! 이 보다 더한 럭셔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남편과 조용히 커피부터 마시고 있었다- 무엇을 먼저 공략할지 생각하면서. 5분쯤 지나자 옆테이블에 3 미녀가 자리 잡는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엄마, 이모, 딸 이렇게 여행 중인가 보다. 검게 그을린 건강한 피부에 이태리 언니들 답게 패션 감각을 자랑하며 선글라스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조식 상차림에서 음식을 가지고 왔다.


이모처럼 보이는 분 - 작은 접시에 크루아상 하나, 미니 팬케익에 쨈 하나, 과일 세 조각. 다이어트 하시나?

엄마와 딸로 보이는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 달랑 가벼운 한 접시에 달달한 빵조각 하나와 커피 한잔.  그리고는 한 시간가량 신나게 빠랄빠랄 멋진 이태리어 수다를 남기고 고급 슬리퍼를 끌고 테이블을 떠났다.


그 사이 더 많은 이태리 언니 오빠들을 보고 싶던 나의 바람을 산산조각 뿌개면서 덕국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든 대화를 알아듣는 남편은 짜증내기 시작했다. 이 시골 구석을 어찌 알고 다 오느냐고… 우리도 찾았는데 다른 독일 사람이라고 못 찾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휴가지에서만은 독일어를 듣고 싶지 않아 하는 남편을 위해 오지에 오지를 골랐는데 실패했다. 옆테이블의 멋진 이태리 3 미녀 외에는 7-8 그룹이 가족이나 커플로 모두 독일인들이었다. 남편은 북킹 닷컴에 “독일인이 가지 않는 “이라는 필터가 생겨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자신의 국적을 망각한 채로…


어찌 되었든 조식을 든든히 먹는 사람들이 많은 독일 사람들이 내려오자 숙소직원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삶은 달걀이 동나기 시작했고 베이컨, 볶은 계란, 훈제 연어, 크루아상 등 줄줄이 바닥을 보였다. 우리를 위시하여 달고 맛있는 과일을 잘 못 보는 걸신들린 해가 귀한 나라 사람들이 무화과, 복숭아, 살구, 수박, 딸기, 파인애플 등을 걸신들린 것처럼 차례로 비워냈다.

뒤늦게 조식을 먹으러 내려온 딸내미가 언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냐 놀라며 좋아하는 크루아상이 똑 떨어져 못 먹게 되었다.


 에어 비앤비 조식담당 직원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능숙하게 음식들을 채워냈지만 먼 배이커리에서 배달되었을 크루아상은 끝끝내 채워주지 못했고 빛의 속도로 줄어드는 음식은 점점 감당 안되어 보였다.


나지막이 남편과 이야기했다. 한통속 취급받기 전에 자리를 뜨자고- 우리 아들까지 왔었으면 기둥뿌리 뽑는 건데. 놓고 와서 참 다행이다. 한 시간 동안 폭풍 식사를 끝내고 늦게 온 하지만 제대로 조식을 챙겨 먹기 위해 분기탱천된 경쟁자들을 조식 테이블에 남겨두고 그날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 누구도 나를 독일사람과 관련짓지 않겠지만 왠지 모를 부끄러움 밀려왔다. 이태리 사람들처럼 가볍게 먹고 싶었으나 되려 독일인들을 너끈하게 이겨먹었다. 많이 먹는 게 자랑이 아닌 이 나이에… 휴가에 찐 살은 휴가 끝나고 생각하리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

#우아한 이태리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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