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충성하게 되었다
일 년 가까이 커피를 끊고 카페인을 멀리했었다.
매일 아침 한 잔. 주중에 어쩌다 점심 먹고 개운하게 한잔. 이런 식으로 즐겨오던 커피를 끊었던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일의 양이 폭발하면서 동시에 독사 같은 (혹은 원래는 독사가 아니지만 나의 어떤 성향 때문에 본인의 독사 성향이 발현된 백설공주에 나오는) 나르시시스트 마녀와 지난 2년간 정신적 사투를 벌였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서 끊임없이 갈등이 생기고 부딪친 세월이 길어지면서 언젠가부터 커피를 마시고 나면 가슴이 뛰면서 진정이 잘 안 되었다. 그녀에게 시달린 것이 제1 원인이지만 원래 카페인에 심약하고 갱년기도 한 몫했다.
가심이 두 방망이질 치면서 불안증세가 정기적으로 나타나자 덜컥 겁이 났고 미련 없이 커피를 끊었다. 그 그윽한 향에서 오는 기쁨과, 도파민을 천장 끝까지 솟구치게 해서 해야 할 일들을 착착 끝내게 해주는 마법의 긍정적 효과보다 마음이 두방망이질 치면서 생기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더 버거웠다.
하루 한잔의 커피는 단숨에 끊어졌으나 그 금단 증상은 가지가지 단계별로 나타났다.
첫 주에는 아침에 딱 한잔씩 마시던 커피를 줄인 것이었는데도 피로와 집중력 저하가 찾아왔다. 겨울에 끊었으니 다행이지 춘곤증이 만연한 봄이나 여름에 끊으면 피로감을 훨씬 크게 느꼈을 것이다.
아주 가끔 두통이 생기기도 했는데 혈관을 수축시키 역할을 하던 카페인을 공급해주지 않았더니 아무래도 몸속의 모든 것의 느슨해지는 나이에 혈관이 슬슬 확장되면서 두통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우울감과 짜증, 심지어 불안하지 않으려 커피를 끊었는데 불안 증세가 더 나타나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 번 도파민을 뿜뿜 뿜어주던 카페인 공급이 사라지면서 감정적으로 불안정해졌다.
게다가 역공격으로 쇼츠 중독에 빠졌다. 도파민이 나올 곳이 없다 보니 강아지, 고양이, 판다 채널부터 한국은 물론 스페인,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아가들 유머 쇼츠까지 싹 섭렵해 가며 온라인에서 랜선 할머니가 되었다.
하아~~~ 도파민 공급원이 사라져 더 나쁜 중독으로 옮겨가니 (커피는 일할 때 생산성이나 올려주지) 커피를 끊는 게 맞는지 고민되었다.
힘들게 고민도 하고 해롱거리며 카페인과 이별 후 2주쯤 접어들자 서서히 집중력이 회복되었지만, 피곤함은 여전했고 쇼츠 중독도 다스리기 힘들었다. 그렇게 오락가락 1년을 견디며 가까스로 커피를 멀리했다.
이지경이 돼 가면서 그나마 건진 것은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는 현상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 신이시여. 저를 버리진 않으셨습니다). 그와 함께 찾아온 의욕의 저하와 오후 5시면 매일 하루의 에너지가 바닥 치는 모든 변화는 그냥 받아 들며 살았다. 8시에 잠자리에 드는 50살의 착한 어린이가 되어가면서…
8월 22일부터 10일간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딱 끊고 있던 커피를 아침마다 마신다. 이유는 단순한데 호텔 조식을 먹으며 커피 한잔을 곁들이지 않을 수 없어서다. 남이 근사하게 차려준 밥상을 먹는 얼마 없는
귀한 기회인데 카페인이 어쩌고 하며 망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오랜만에 시도했다. 커피 마시기를. 오마나
세상에, 머리에 살짝 전기가 들어온 것처럼 혈액이 순환하는 것이 느껴지고 동맥이 불끈불끈 솟는다. 휴가라 딱히 할 일도 없고 여행하면서 구경 다니고 쉬면 되는데 갑자기 앞으로 어떤 종류의 새로운 일을 꾸며볼까 엉뚱한 구상에 빠진다. 개학해서 학교 출근 하면 자취도 없이 사그라들 일장춘몽을 수십 개씩 계획해 가며 브런치 좋은 일만 하고 있다. 열흘째 (질 낮은) 글을 매일같이 발행하고 오늘은 드디어 정기 발행 브런치도 하나 약속했다.
사실 열 올리면서 두 개의 작품을 응모해 보았었는데 똑 떨어져서 삐져있다. 당선된 작품들을 보면 다들 너무나 훌륭해서 내가 왜 떨어졌는지 나노초 사이에 수긍이 가지만 반백살 아줌마의 삐짐에는 이유가 없다. 연료(즉 커피)도 없이 쓴 글들인데 떨어뜨렸으니 브런치는 그냥 내게 미안해해야 한다.
이제 응모와 상관없이 나의 해마(hippocampus)의 건강을 위해 지극히 사사롭고 이기적인 글을 써 갈 것이다. 휴가가 끝나면 다시 카페인을 멀리할 것인데 그때는 무슨 힘으로 글을 쓰게 될는지 모르겠다. 성의 없는 배설임을 알면서도 자비로운 라이크를 눌러주시는 맘 좋은 몇몇의 브런치 동지들을 믿고 무모하게 연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