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적 사고방식과 모자이크적 사고방식
엔지니어인 남편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한 번에 한 가지씩 해결하고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 선형적 사고 (linear thinking)를 한다. 즉 1번 문제가 끝나면 2번으로 가고 해결된 1번은 자신의 데스크에서 완전히 떠나보낸다.
모자이크식 생각을 하는 나는 다르다. 나는 1번도 열어 놓고 2번도 열아놓고 여러 가지 문제를 열어 놓고 이것을 해결하다 저기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를 반복하며 생각하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일상생활에 관한 주제를 다룰 때에 더 두드러진다.
자신의 입장에서 매번 변화무쌍해 보이는 나의 결정에 남편은 매번 (부정적으로:) 놀라며 신기해한다.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내 생각패턴에 아직도 적응 못하는가 나무랄 수 없는 이유는 나 역시 지난 20년간 남편이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때마다, 또한 그가 일상의 문제를 보는 렌즈의 크기가 현미경만하다는 것에 꾸준하고 한결같이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아주 자주 있는 우리 부부의 대화패턴이다.
나 : 오늘 오후에 장 보러 XX슈퍼에 가자.
남편: 응 그래.
오후가 되어 함께 나갈 준비를 하면서
나 : (신발을 신으며) XX 슈퍼 말고 땡땡
슈퍼로 가자.
남편: (정색을 하며) 아까는 XX 슈퍼 가자며
나 : 아 꽃집 들렀다가 가려면 땡땡 슈퍼가 더 나을 것 같아서
남편: XX슈퍼 갔다가 꽃집으로 가도 되잖아...
사람이 생각하다 보면 가기 직전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 남편은 그럴 때마다 내가 왜 그러는지 꼬치꼬치 묻는다. 그냥 가자는 데로 가면 되지 왜 토를 다는가? 그러면서 나의 마음이 항상 요동친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보기에 나의 생각의 패턴은 항상 브레인스토밍 하는 중으로 보인단다.
그럼 직장도 아니고 이것저것 생각이 바뀌면 내 맘 데로 바꾸는 거지…. 왜 감히 나의 결정에 때때마다 딴지를 거는가! 예전에는 토를 달 때마다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했었다. 어쩔 때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많은 상황에서 나의 대답은 그냥 그게 좋아서인데 어찌 설명을 해내랴.
문화 차이가 크고 성격차이가 극명하고, 어디 하나 공통점이 없는 부부 관계를 잘 운영하려면 인내와 열린 사고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열린 사고의 문은 하나씩 둘씩 닫혀만 가고 마지막 한 개의 문짝을 닫히지 않게 하기 위해 덜덜 떠는 손으로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다.
여기엔 갱년기도 한 몫한다. 젊고 인내심이 깊었던 아내가 순간에(?) 갱년기의 악귀가 된 것을 너무 빨리 알게 되면 적응 못할 것이 뻔한 불쌍한 남편을 위해 나는 혼신을 다해 너그러운 척 연기하고 있다. 그런데 에스토르겐 호르몬이 쩍쩍 말라가면서 아슬아슬하던 이 연기도 훤하게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냥 외쳐버리고 싶다.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땡땡 슈퍼로 가자면 좀 가자!!!!!!!"
이런 단순한 에피소드 외에도 내가 포인트 별로 매뉴얼처럼 대화하지 아니하고 몇 단계를 훌쩍 떠 넘는 생각을 이야기하면 자꾸만 건너뛰기 전에 이야기되었던 단계로 나를 질질 끌고 와 그 뻔한 이야기를 굳이 하게 만든다. 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뭐든지 시간의 순서대로 아주 자세하게 모든 상황을 빠짐없이 다아아아아~~~~~ 이야기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 말인즉슨 나는 그것을 다아아아아~~듣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은 핵심만 말해달라고 했다가 된통 당했다. 핵심을 추리기 위해 일단 상황을 좌~~~ 악 설명한 후에 핵심 사항을 얹어서 말해주는 바람에. 내가 자기의 말에서 중요 부분을 놓칠까 걱정된단다 (크으~~~ 어차피 다 듣지 않는데… 왜 모른다냐)
즉 남편은 대화 중에 (특히 진지한 대화 중에) 모든 것을 문자(소리) 도구에 백 프로 기대어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소통해야 하게 되는데, 매우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나 (직장에서의 모습은 물론 다르다)는 그러한 지난한 대화가 답답하고 지루하고 피곤해 몸에 사리가 생긴다.
그렇다고 남편이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동굴에 들어가 있기 일쑤도 혼자서도 잘 노는 데다가 심지어 혼자 파티도 한다. 늘 같은 시간에 기상하는데 가끔 30분 더 자겠다고 할 때가 있는데 십중팔구 밤에 혼자 파티를 하고 와인 1병과 애지중지하는 나의 새우깡을 훔쳐먹은 후 아침에 흔적도 없이 치워 놓고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증거를 인멸하는 치밀함까지 보인다.
혼자서도 잘 놀지만 설명을 해야 할 때나 나에게 들어야 할 설명이 있을 때 충분한 시간, 아니 몸이 베베 꼬이도록 시간을 들여 (나는 이것을 꽈배기 타임이라 부른다) 저렇게 선형적인 사고를 하면서 스케줄표를 읊는 것 같은 자세로 나와 대화를 하고자 한다. 아무래도 스프링 공인 나는 이 길고 (내 보기에) 한 방향으로만 전진하는 지루한 대화에서 탈피하고자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튀어보려 하지만 또 남편은 그런 나를 진정(?)시키면서 내 말을 알아듣고자 나를 공중에서 끄집어 내려 바닥에 패대기치기를 반복한다. 이것이 우리 부부가 서로의 몸 안에 다정하게 사리를 쌓아주며(?) 대화하는 모습이다.
콩깍지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이 어마어마한 생각과 대화 방식의 차이가 20년 전엔 왜 안 보이고 안 느껴졌던가?
그렇다면 콩깍지가 다 닳은 지금은 어찌 버텨 가는가?
선형사고를 하는 남편과 모자이크 사고를 하는 부인은 세월의 힘으로 버텨나간다. 서로 몰래몰래 대화 중에 갈구기도 하고 그러다가 크게 싸우기도 하면서 다음번에는 내가 조금 더 높은 고지에 서리라 다짐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