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차 대전까지 준비된 남자와

걱정 없이 평화롭게 살고 싶은 녀자

by 문맹

독일 사람들이 재난에 대비를 잘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독일도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를 요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긴 하지만 재난과 안전에 대비하는 이들의 생활습관은 '설마 나한테까지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하는 생각 없는 낙천주의를 타고난 나에게는 넘사벽이며 심지어 '이렇게 까지 대비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반감을 가지게 한다.


결혼 초기에 나는 남편의 안전 과민증(?), 즉 안전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불안에 휩싸여 있어'보여' 늘 걱정했었다. 그 걱정은 다행히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싸악~하고 사라졌다. 이웃들이 안전에 대해 어떠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듣고 보니 남편의 재난에 대응하는 정도는 주변 독일인들에 비해서는 평균치 밖에 되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갈 정도는 아니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웃들의 재난에 대한 준비성은 그동안 남편과 살면서 남편만의 히스테리인 줄 알고 있었던 부분을 문화로 판명 짓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물론 내가 모든 독일인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며 사회경제적 수준차이 역시 얼마나 재난에 민감한지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으나 집에서 주위에서 또한 직장에서까지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은 가상하다. 한 두가지만 생각해 내자면,


독일법에는 거실, 방, 공간이 나눠져 있는 모든 곳곳에 화재 경보장치를 달아야 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것을 매년 바꾸는데 수십만 원이 든다. 그리고 경보기에 건전지가 닳면 삐리리 삐리리 소리를 내기에 연말이 될 즈음에 자다가 몇 번 깬다. 그것도 방마다 경보기 안의 건전지가 죽어가는 시기가 달라서 일 년이 지나는 어느 캄캄한 밤 중에 한 번은 거실 경보기가 징징대서 깨고, 한 번은 애들 방 경보기가 징징대서 깨는 등등... 두 개쯤 징징대면 그냥 다 새로 사다가 갈아치워야 한다. 아니면 방의 개수대로 자다가 깰 수가 있다. 해가 시작 되는 정월 초에 늘 전자상가에 가서 공간의 개수에 맞게 세트로 사서 갈아 끼워야 하는데 평생 경보기를 내 돈 주고 사본적이 없는 나는 이것에 투자하는 돈이 매년 아깝다. 방마다 세뱃돈 주었다고 생각해야 하나... 남편은 연초가 되기 한참 전부터 나에게 해가 바뀌면 경보기를 바꾸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옆집 부부는 프랑스-독일 부부인데 내가 그 프랑스 부인에게 남편의 재난대비 과민증에 대해 이것저것 험담을 했더니 한 술 더 뜨는 바람에 깨갱해 버렸다. 그녀가 말하길 자기 남편은 현관문을 방탄문으로 바꾸었다고... 미쿡도 아니고 독일에 총기 소지는 (사냥 등을 위해) 등록된 것 이외에는 한국에서처럼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웬 아파트 현관문을 방탄문으로 개조? 그것도 놀라웠는데 베란다에는 화재 시 대피 가능하게 접이식 사다리를 갖추어 놓았단다. 그 이웃은 3층에 산다. 화재가 나면 불자동차 오기 전에 자기만의 사다리를 펼쳐서 대피하도록 준비하고 살고 있다는 데 놀랐다.


집집마다 신발장 근처에 구급상자가 갖추어져 있고 뭐 하나 빠지면 (예를 들어 반창고 등) 다시 사서 채워 넣기를 검사하지 않아도 재깍재깍 해놓고, 늘어진 전선줄이나 삐걱거려 문이 잘 안 열리거나 지하 주차장에서 못 보던 물건이 나왔다 하면 경쟁이라도 하듯 앞을 다투어 신고한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역사회가 안전하고 잘 관리되는 점이 있음에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인터넷에 널리 퍼진 독일에는 CCTV가 필요 없다. 할머니들이 다 보고 있어서... 일리 있는 농담이다. 서로 감시와 신고의 눈을 느슨하게 하지 않기에 지역 사회가 안전하고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된다.

그렇지만 모든 문화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재난에 미리미리 대비하는 이 생각은 생활에서 생각지 못한 곤란을 부른다. 울 남편은 여행가방을 쌀 때 가방의 절반이 재난대비 물자이다. 여행에서 재난대비 물자란 별일 없으면 필요 없지만 호옥~시나 필요할 지도 모른는 물건들인데 예를 들어 더운 나라로 갈 때는 모기퇴치제이다. 현지에서 살 수 있다 아무리 말해도, 혹시 현지에 그것이 떨어져서 못 살 것을 대비해 모기퇴치와 관련된 물건들을 사서 가방에 꾸려 넣느라 난리다. 식구별로, 방별로, 실내에서, 실외에서, 혹시 식당에 갔을 때 밖에서 밥먹을 때를 대비하여... 이 습관은 나이지리아에서 3년 동안 일하고 살았던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쉽게 고치지 못한다. 말라리아로 죽은 동료도 있고 해서 모기가 살생을 할 수 있는 곤충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모기와 동거동락하며 자란 나에게 모기는 그냥 손바닥으로 비벼 죽이면 되는 미물일 뿐이다.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나라들 (대부분의 유럽 지역)로 여행을 가는 경우 여행가방은 4계절의 옷으로 뒤덮인다. 혹시 비 오면, 혹시 눈보라가 치면, 혹시 추우면, 혹시 더우면.... 하면서. 그리고 신발도 이것저것 가져가야 한다. 꼭 필요하면 가서 사서 입거나 신으면 되지 뭘 이렇게 다 챙겨 가야 하냐고 물으면 슬픈 눈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그 나라에는 자신의 옷이나 신발 사이즈가 없다고... 사실 이 부분은 좀 불쌍한 부분인데 남편은 193센티미터 신발사이즈는 320에 게다가 팔이 길어서 항상 엑스트라 긴 팔 (long arm) 사이즈를 골라야 한다. 어디서 필요하다고 옷이나 신발을 원하는 데로 마구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돈도 굳고 좋을 때도 많다. 아무거나 지를 수 없기에... 이거, 여보야 꼭 사주고 싶은데 사이즈가 없네? ㅎㅎㅎ). 유럽은 큰 사이즈가 많지 않을까 할 수 있지만 북유럽은 장신의 사람들이 많지만 휴가로 유명한 남부로 갈수록 옷이며 신발 사이즈는 점점 작아진다. 즉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거나 하면 신발도 옷도 마음대로 사 신고 입을 수 없다.


하여튼 남편은 여러 가지 핑계로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짐가방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리고 휴가 가서 자신이 그렇게 엑스트라로 싸간 짐을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짐가방의 절반은 그냥 재난 대비용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한 번 오스트리아 언저리에서 날씨가 정말 추워져서 8월에 가져갔던 재킷과 긴 청바지를 꺼내 입은 적이 있었다. 그것을 3박 4일 동안 외쳤다. 그 보라고 자기 말이 맞지 않냐며... 미치는 줄 알았다. 참느라고... 몸속에서 사리가 새록새록 늘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20년 동안 회초리를 들고 야단치고 잔소리하고 해도 잘 고쳐지지 않다가 코로나로 비행기 값이 비싸지고 특히 저가 항공사의 경우 짐하나 보내는 가격이 비행기 티켓과 맞먹고... 비행이 아니라 자동차로 휴가를 간다 하더라도 강아지같이 작던 두 아이들이 아빠보다 더 커져서 똑같이 큰 가방으로 짐을 싸게 되는 바람에... 이제 예전처럼 자동차 트렁크도 자기 짐으로 마음대로 장악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외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남편의 짐 싸는 방법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N차 대전에 대비하기 위해 들고 다녔던 모든 장비(드라이버, 작은 톱, 칼 등)가 달린 무거운 커터컬도 놓고 다니고, 모기향도 적게 들고 가고, 옷도 좀 덜 싸서 다니고, 속옷과 양말도 세면대에서 빨아서 말리는 법을 가르쳤다 (남편은 구세대라 독일 군대도 다녀왔는데 이것도 모르나 싶다). 365일 해가 쨍쨍 나서 재난이라고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사건 사고도 많은 한국이지만...) 나와 살면서 그의 짐 싸는 방법은 가벼워지고 나는 N차 대전에 대비하는 남편과 살아서 이제 세상에는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으니 대비하고 살아야 한다는 일말의 준비하는 마음과 습관이 싹트고 자리 잡았다.


피곤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면서 다름을 인지하고, 갈등을 마주하고, 배우고 가르치며 사는 일은 보람있고 나를 성장시켜준다. 그러나, 다음 세상에서는?????


적어도 이 생에서는 같이. 치열하게. 살기로 한 것이 중요하다. 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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