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방식의 차이 - 자녀 독립 시키기
엊그제 열여덟이 된 아들은 곧 집에서 나가 독립한다. 다음 주에 이사를 앞두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 마음이 바쁘다. 당사자인 아들은 독립의 기쁨과 앞으로 혼자서 모든 일을 치러내야 하는 두려움과 설렘으로 매일 같이 나가서 술을 먹는다 - 독일은 16세면 부모동반하여 도수가 낮은 맥주 같은 알코올을 마실 수 있고 18세면 완전한 성인이라 지 인생은 지가 책임져야 한다. 주변에 18, 19세의 호르몬이 들끓는 친구들이 깔렸기에 모두 같은 이유 '독립만세의 기쁨, 설렘과 두려움'으로 매일같이 세상의 알코올 섭취량을 대폭 증가시키는데 한몫을 해내고 있다. 자랑스런 내 아들... 대학도 가기 전에 알콜성 치매로 들어설까 걱정이다.
독일은 의대, 법대 등 몇몇 학과를 제외하고는 대학 가고자 하는 모두에게 입학의 기회를 준다. 그러기에 한국에서와는 달리, 독일에서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축하를 받아야 하는 때는 대학 졸업이지 입학은 아니다. 매 학기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같은 시험에 두 번 이상 떨어지면 아웃이다. 즉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기회는 다 주지만 매 학기 시험으로 자신들이 정해놓은 꽤 높은 기준에 맞는 학생들만 통과시켜 주는 즉 실력 있는 학생만 졸업시켜 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독일에서 대학 입학은 한국에서 처럼 무엇인가를 성취한 것이 아니기에 크게 기뻐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아이를 한 사회인으로 독립시켜야 하기에 생활적인 고민이 훨씬 더 앞선다. 저 코 찔찔이가 앞으로 지 방청소를 잘할 것인가, 지 빨래를 알아서 잘할 수 있을까, 굶어 죽지 않고 요리를 하며 살 것인가, 쥐꼬리만 한 용돈을 짜게 써가며 잘 살아갈 것인가 등등...
지 아빠와 같이 기계공학과를 지망한 아들은 공대 개떼로 유명한 대학에 지망했고 대학이 위치한 도시에 4-5년간 살 방을 구했다. 방을 구하는 것부터 기본적인 살림살이를 장만해서 넣는 것까지 같이 뛰며 준비한 남편은 수세기 전 자신의 대학생활이 생각나서 그런지 신나서 아들이랑 단짝이 되었다. 돈이 필요한 아들은 아빠의 비위를 맞추어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애교를 피우고 남편은 그동안 사춘기를 겪으며 우리와 거리를 두던 아들이 살갑게 구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알면서 당한다.
이 준비의 과정 중에 어찌 난관이 없겠는가. 남편과 나는 둘 다 부모님이 넉넉하지 못하셨기에 자수성가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지만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혼자 힘으로 어른으로 자라났다. 그러기에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함에 철떡 같이 동의한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그것이 디폴트다. 이렇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그 디테일에서는 남편과 나의 생각이 너무도 다르다. 나는 무엇이든 넉넉하게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경제적인 힘도 없지만) 아이의 목을 조르지는 말자는 주의이고 남편은 이왕 독립시키는 마당에 철저하게 아이를 어른 취급, 남취급 하겠다는 늘 그렇듯이 원칙주의자이다.
일단 한 달의 용돈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집세, 전기세, 인터넷 사용비 등과 식비를 계산해서 얼마를 매달 통장으로 6개월간 넣어주기로 했고 (첫 학기는 적응하느라 힘들 것이기에) 6개월이 지나면 아들이 알바를 시작해서 조금씩 벌어 그중의 30퍼센트를 조달해야 한다. 즉 부모는 6개월 후부터 필요한 돈의 70퍼센트만 보내준다. 1년이 지나면 부모와 자신의 감당 비율이 1대 1로 바뀌고 3년 차부터는 아들이 생활비 모두를 혼자 일어서야 한다 (독일은 학비는 공짜다). 이 점까지는 함께 계획했고 나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부분이다. 그러나 디테일에서 왕창 차이를 보인다.
아들: 주말에는 집에 와서 지내도 되나요?
애미: 물론이지, 와서 푹 쉬고 가렴, 맛있는 거 해줄게
애비: 용돈 안에 주말에 쓸 것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주말에 집에 와서는 식비 및 방세를 지급해라!
남편의 이 말을 듣자마자 농담 아닌 줄 알았다.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원칙주의자인 남편은 예외가 없다. 이 말을 하는 당시 그의 눈빛이 말해주었다. 이것은 100프로 진담이라고. 나는 우리 사이의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싸~~~ 함을 느꼈다. 이렇게 애를 매몰차게 내보내는 것도 속이 상한데...
나, 즉 애미: (벌겋게 달아올라) 그게 애비로써 할 소리요?
아들 (킥킥대고 있다)
남편, 즉 애비: 규칙을 정했으면 따라야지...
아이고 두야... 한 번 규칙을 정하면 예외를 만드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남편은 여기에서도 제대로 진가를 보인다. 물론 양육 방식의 차이도 있다. 컨트롤을 철학으로 삼는 그는 아들은 컨트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는 부드럽고 인간적이며 방목적 양육을 지향하는 나도 부분적으로는 동의한다. 내가 잘 못해서 놓치는 부분이 제어할 줄 아는 양육이고 이 부분을 남편에게 전가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제어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네 맘대로 니꿈을 찾아 펼치며 살아라를 알려주는 것만큼 중요하다 (특히 독일에서! 한국은 너무 제어하는 양육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겠지만). 나는 21세기에 책방에 넘쳐나는 아이들을 자신만의 뭐로 키우자는 책들의 물결이 남을 생각할 줄 모르고 나만 아는 아이들, 절제를 모르고 향유하는 사람들로만 키운 것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책은 잘못한 것이 없겠으나 이런 육아의 흐름이 만들어 낸 것은 과거의 컨트롤의 육아에서 벗어나려다가 너무 또 다른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마케팅의 병폐이다. 어.쨋.든...
남편의 기막힌 프로포절 - 즉 "주말에 놀러 온 아들은 우리에게 식비와 집세를 낸다, 왜냐하면 용돈에 식비와 집세가 포함되어 있으니"는 광분하여 펄쩍펄쩍 뛰며 논리력을 상실한 애미의 감정에 충실한 제지로 집세만이라도 제발 빼는 것으로 결론 났다. 즉 아들은 학교식당 값을 내면서 주말에 집에서 지내도 되는 것으로 협상안이 가결되었다. 애미는 이 협상안이 마음에 드는가? 물론 아니다. 기막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우리 가정, 완전한 타인 둘이 만나 새끼를 함께 키우는, 사정에 가장 맞는 결론이다.
아들이 꺼이꺼이 웃는다. 재미있단다. 그래 다행이다. 무엇인가 배웠으면 되었다. 독일-한국 문화가 섞이고 원칙주의(universalism)자 아빠와 특수주의자 (particularism, 다른 상황에서 늘 다른 원칙을 내세우는) 엄마를 가진 가정에서 살아가면서 협상은 이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운 것만으로도 득이다.
이제 한국 애미는 애한테 주말마다 식비를 받게 되어서 기막히고, 독일 애비는 식비만 받고 집세는 못 받아서 억울하고, 그 사이 열여덟 살이 겨우 넘은 아들은 킥킥대며 친구들한테 이 별난 이야기를 꼬들여 바치느라 핸드폰에 불이 난다.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