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차이와 카라멜 마끼아또
성격, 인종, 세대, 관심사 및 취향까지 비슷한 것 하나 없는 우리 부부는 왕왕 생기는 의견 충돌 때마다 사용하는 해결법이 있다. 20년간 살면서 구축해 낸 이 방법은 신박하지도 않고 심지어 너무나 지난하다 - 싸울 때에 '힘 빼고', '김 빼고' 대화하는 것이다.
힘 빼고 김 빼고 이야기하는 방법은 20년간 함께 살면서 우리 부부가 서로의 몸 안에 사리를 만들어 가며 만들어낸 해결책인데 특히 젊었을 때 별명이 토마토 (열받으면 벌겋게 달아 올라서 펄쩍펄쩍 뛰던)였던 내가 조곤조곤 따지고 말하는 남편이랑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울면서 터득해야 했던 방법이다. 그러나 반전은 있다. 이제는 남편보다 내가 더 잘한다. 김을 뺄 때마다 한숨소리 일부러 크게 '푹푹' 내 쉬며 기선을 제압한다.
오늘 충돌의 주제는 늘 그렇듯이 애들 훈육에 대한 이야기였다. 방목주의를 강력하게 내세우는 나는 아이들의 행동을 늘 제어하고 발전시켜주고자 하는 남편과 항상 충돌한다. 나의 방목주의가 표방하는 바는 '아이들을 믿어주어야 한다'이지만 남편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솔직한 내심은... 대부분의 경우 귀찮아서 참견하기 싫거나 애들이랑 싸우기 피곤해서이다. 일일이 잔소리하고 가르치고 챙기고 싸우고... 이게 해보니 꽤 힘든 일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소리 지르고 난리 치면서 통솔이 가능했었는데 두 자녀가 사춘기에 들어서 나보다 신체적으로 커지면서 이러한 마이크로 메니징이 점점 힘들어졌다. 또한 직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남의 집 자식들에게는 정성을 다해 훈육과 교육을 하고 집에 와서 우리 애들 돌보는 일에 점점 소홀하게 되었다. 즉 입금되지 않으면 가르치치 않는다.
반면에 남편은 애들을 믿긴 뭘 믿어, 특히 아들은 좀 혼나야 정신 차린다고 생각하고 훈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은 일도 아이들과 상의하려 하고 (당연히 아이들은 아빠랑 말하기 귀찮아한다. 디테일하게 참견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으면 덤벼들어 왈왈 대며 애들과 싸우면서 끝장을 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지만 반면에 아이들과 충돌도 많다. 그러한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나는 라디오나 티브이를 꺼버리듯 스위치 내리고 애들과 아빠 싸우는 소리를 안 듣고 싶다. 나 없는데서 하던지...
화합과 하모니가 중요한 한국 문화와 대화에서 충돌은 당연한 것이며 이러한 충돌을 풀어나가는 것에 잡음은 견뎌야 하는 과정으로 알고 있는 독일문화가 만나 결국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다. 오늘 18세 생일이 다가와 프랑스 니스로 친구랑 놀러 가려는 아들이 새벽비행기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야만 하나 (독일은 택시비가 비싸다) 전철을 타야 하나 뭐 그런 것으로 남편과 디스커션에 들어갔다가 또 30분간 열띤 토론에 걸려들어갔다.
이런 토론이 시작되면 단순히 어떤 교통기관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에 그치지 않고 왜 택시인지 전철인지부터 해서 고릿 절 시절 우리의 각자 달랐던 선택들까지 다 끄집어내어 왜 그랬는지 그 결정과 오늘의 결정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이것이 앞으로 아이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까지 이야기하면서 이 지난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생각과 다른 결정, 즉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남편에게 화가 나서 (지금도 화나긴 마찬가지다. 사람은 본성을 숨길 수 없다) 길길이 날 뛰었지만 이제는 먼산을 보며 화를 삭이면서 가장 나긋나긋하지만 매우 힘 있는 목소리로 반드시 그가 말한 부분을 먼저 인정해 주고 (네 말이 이런 부분에서는 맞지만 사실 내가 맞지 하며) 나의 의견을 힘주어 다시 개진한다. 못 알아들으면 그동안 살면서 일어났던 가지가지의 예를 들어준다 (양인들, 특히 과학공부한 양인들은 실제 일어났던 이그젬플을 들어주는 것이 최고이다).
오늘도 칼로 물을 베는 양육에 관한 평화롭지 못한 (?) 부부 의견 개진을 라인 강가를 걸으며 30분간 힘 빼고(?) 김 빼고(?) 한 후에 강어귀의 아폴로라는 연극상연관에 딸린 카페에 앉았다. 일단 외면적으로 갈등은 마무리되었으나 내면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 분을 풀고 위선(김 나지 않은 척)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고 싶었으나, 한국식 맛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직 제대로 상륙하지 않은 이 동네에는 시원한 커피가 없고 뜨거운 커피밖에 없단다. (욕조로 만든 의자는 있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는 없는 이 나라, 이 동네에서 살아주고 있는 아내를 분노케 하다니... 남편이 더 미웠다. 부르르... 부르르...)
그래서 서빙하는 직원분께 부탁했다. 카라멜 마키아또에 시럽을 제발 듬뿍듬뿍 넣어달라고... 앞에 앉은 아저씨랑 싸웠다고...
그러자 사랑스러운 직원분이 컵의 아랫부분을 두툼한 카레멜로 꽉 채워 무장시켜 소름 끼치게 단 카러멜 마키아또를 만들어다 주셨다. 순간 이거 마시면 지구 한 바퀴 돌아야겠구먼 했지만 내면의 평화를 속히 찾는 것이 더 중했기에 천천히 음미하며 한 모금을 마셨다. 크으 달다!
아폴로 카페 벽에 붙은 아름다운 벽화들과 불빛, 그리고 소름 끼치게 단 까라멜 마키아또.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바깥 창문을 보면서 약간 억울했던 힘 빼고 김 뺀 싸움을 이렇게 내면에서도 마무리했다. 역시 단것과 아름다운 것이 최고다. 눈과 입이 즐거우니 머리에 꽉 찼던 김이 술술 빠져나갔다. 다음에 또 싸움 나면 여기 또 와야겠다.
나이가 들면서 남편을 위시한 타인과의 갈등과 충돌을 다루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쇼펜하우어 왈 남이 나를 괴롭히거나 그러한 생각으로 스트레스가 쌓인다면 길가의 돌처럼 뻥 차버리라고 하던데... 같이 사는 남편을 그렇게 뻥 차버릴 수는 없고 내가 찾은 현재까지의 정답은 소름 끼치게 단 카러멜 마키아또 한잔인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