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와 멕시멀리스트의 동거

지하실에서(만) 거둔 승리

by 문맹

요즘 소유물을 줄이는 것만이 아닌 명확한 세계관을 가진 훌륭한 미니멀리스트들이 많다. 감히 그중에 끼지는 못하지만 무늬만 미니멀리스트 정도는 된다. 일단 타고난 나태와 태만덕에 쇼핑을 싫어하고, 먹고살고 애 키우기 바쁘다 보니 아름다운 것에 심취하고 시간을 들이는 일에 더욱 인색해졌다- 이 점은 좀 안타깝게 생각한다. (but 대자연이 '공짜로' 선사해 주는 아름다움은 거부하지 않는다. 이것마저 없었으면 나는 황폐한 아줌마가 되었을 것이다.)


수년간 나를 위해 구입한 물건은 거의 없고, 청소와 빨래거리를 최소화하는데 목숨을 걸기에 물건을 하나 구입하면 쓸모없거나 앞으로 쓸모 없어질 물건을 찾아서 바로바로 버린다. 이 모든 행동의 기반은 그냥 게으름인데 바뀐 세상의 트렌드가 나를 좋은 (환경을 생각하고 만연한 소비풍조에 휘둘리지 않는 듯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어 고마울 뿐이다. (세상에 공짜로 얻는 명성도 있다니!)


반면 우리 집 아저씨는 버릴 줄을 모른다. 이것은 약간 문화와도 관련 있는데 독일은 수집(Sammlung)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시스템이 그러하다 보니 사람들이 이렇게 되었을지언데 (문화적 시스템이 그러한 사람들을 만드는지 아니면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한 문화적 시스템을 만들었는지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 인가와 같은 질문 일지어다) 독일은 집집마다 지하실 창고에 쓰지 않지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 물건(?)및 개인적인 기록으로 꽉꽉 차있다.

결혼 후 어느 날 지하실 정리를 하다가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그 지하실 창고의 짐들은 다 남편 것인데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열어본 적이 없었다. 결혼초 3년간 우리는 여섯 번의 이사를 했었는데 그중 국제이사가 2번 국내 이사가 4번이었다 (한국에서 이사는 잦은 일이지만 독일에서 이렇게 이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회사에서 이사비용을 대 줄 때는 생각 없이 이사를 하다가 (회사 비용을 마구 써도 된다는 개념이라기보다 회사발령은 보통 이주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급하게 나기에 차근차근 물건을 정리해서 이사할 겨를이 별로 없었다.) 마지막 이사는 우리의 의지와 비용으로 하게 되었고 판도라의 상자인 지하실 상자들을 처음으로 개봉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반세기가 다 가도록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공책, 성적표, 앨범까지 모두 데리고 살고 있었다. 수백 장의 사진은 물론이고 고등학교, 대학교 노트, 수 십 년 된 물건의 영수증철, 군대 계급장 (장교도 아니고 이등병, 일등병...), 군번줄, 신발깔창.. 손목시계도 처음 장만한 것부터 지금 차고 있는 바로 전 버전까지 모두 다 가지고 있었다. 지하실은 그냥 자신의 박물관이었다.


이거 버려도 되냐고 물으면 '절대 안 된다'라고 하며 왜 그 물건들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인지 쉴 새 없이 설명을 해댄다. 상자랑 남편이랑 확 같이 버려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버려야 하나 묘수를 짜느라 조사 중에 남편은 자신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조차 기억을 못 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상자를 열어 버려도 되는 것인지 물어보면 아이같이 신나서 자신의 어릴 적(?), 젊었을 적 고릿적 시절의 물건과 추억이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르며 지난한 설명으로 방어하려 했다. 약해지면 안 된다! 버려야 하느니라! 쥐도 새도 남편도 모르게…

일단 남편을 잘 타일러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벼룩시장에 팔기로 했다. 한 번 마음먹은 K여인의 의지를 굽힐 수 없음을 잘 아는 남편은 일말의 양심은 챙기기로 결심하고 긍정적으로 그러나 대단히 미적지근하게 협상에 임했다. 단 벼룩시장에 내다 파는 일은 나와 남동생이 하기로 했다. 남편이 과거의 물건들을 다시 보면 이거는 이래서 못 팔도 저거는 저래서 쓸 수 있고… 딴지 걸기 시작할 것이며 이러한 스토리가 전개된다면 벼룩시장 준비하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아 집안이 앤티크샵으로 돌변하여 지하실 물건이 위로 위로 차 들어올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후딱 벼룩시장에 물건들을 내다 팔면서 초등학교 물건부터 차곡차곡 모아둔 남편의 박스들을 재빠르게 쓰레기통으로 넘겼다. 박물관을 세워야 할 만한 위인도 못되면서 이 고릿적 상자들을 킵하자는 것이 말이 되는가 씩씩대며. 생각해 보니 얄팍한 질투의 감정이 내 미니멀리즘의 철학의 근간인 것 같다. 나도 다 버리고 네 나라로 왔으니 네 것도 다 갔다 버려라!)

독일은 행정이 워낙 (한국에 비해) 느리다 보니 수년 전의 아카이브를 들쳐서 특히 세금 정산과 관련해서 관공서에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일들이 자주 생겼다. 또한 수차례 이사를 하다 보니 이삿짐 용역들에 의해서 가구가 망가져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도 그 가구의 오리지널 영수증을 첨부해야 하는 등 살면서 종이로 된 영수증과 서류들을 잘 가지고 있지 않으면 골치 아픈 경우가 자주 있다. 날짜가 지나고 처리가 되었다고 해서 서류들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중요한 것을 기리고 기억하고 물건을 모으는 문화가 발전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수집가들이 당연히 있겠지만 독일에는 취미별로 무엇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연중 워낙 비 오고 충충한 날이 많다 보니 이런 취미가 많이 생긴다고 들 뒷담화 한다) 요즘 우리나라도 피규어를 모으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고 하는 일이 많지만 독일에서 그런 일로 티브이에 나오다간 아마 다섯 집에 한 사람은 방송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남편의 수집 중독을 토로하려 독일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그것까지 버리면 어떻게 해 ‘ 하며 오히려 타박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처럼 독일남편과 결혼한 외국인 아내들과 이야기해야만 함께 침 튀기며 시원하게 욕할 수 있다. 지하실을 사수해야 한다고! )

사실 우리나라도 기록으로 말하면 절대로 뒤지지 않는 민족이다. 우리의 조선왕조실록은 그 방대한 분량과 풍부한 내용 그리고 25 왕 472년의 긴 시기의 기록을 빠짐없이 담은 것으로 기록문화의 최고조이다. 나 역시 이처럼 투철한 기록문화를 가진 훌륭한 문화의 후손으로 한 동안 일상을 사진 찍으며 기록했었다... 물론 그 취미도 미천한 집중력 때문에 얼마 못 가서 사라졌지만…


어찌 되었든 미니멀리스트로서 승리를 거두어 지하실에는 더 이상 남편의 실록들이 보관되어 있지 않다. 첩첩이 버전별로 남아있던 손목시계도, 계산기도, 나침반도, 타이프라이터도, 카메라도, 영사기도 조용히 조용히 기부되거나 역사 속 쓰레기통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나의 승리는 지하실에 그친 것 같다. 남편은 이 순간에도 조용히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또 사며 천천히 살림을 늘려가고 있다. 그리고 품목을 컴퓨터 관련 기기 (내가 모르는 물건)로 전문화시켰다. 아마도 실록이 외장하드디스크로 전환 중인가 보다. 벌써 외장

디스크만으로 한쪽 벽장이 가득 찼다. 어느 날 지하실을 청소하듯이 남편의 그 구름 덩이들을 청소해야 할 날이 올 것 같아 불안하다. 그전에 훌륭한 IT전문가가 단번에 “웁쓰”하고 감쪽 같이 통도 그 속의 정보들도 탈탈 다 날려주는 앱을 만들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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